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한국은 35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의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하면서, 분단의 씨앗이 뿌려졌다.
⚔️ 분단과 전쟁 — 한국전쟁
1945년 광복과 함께 그어진 38선, 1948년 남북 각각의 정부 수립,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까지 — 분단으로 이어진 3년의 연대기입니다.
통일 정부를 세우려던 노력이 무산되면서 1948년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남쪽에서는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북쪽에서는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분단이 공식화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하면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국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전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북한군의 보급로를 끊은 이 작전으로 전선은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천 상륙에 성공한 유엔군과 국군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개전 석 달 만의 서울 수복으로 국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할 발판을 마련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하자, 1950년 10월 중국군이 대규모로 참전했다. 인해전술로 밀려든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뒤바뀌었다.
중국군의 공세에 밀린 유엔군은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대규모 해상 철수를 감행했다. 이때 군인뿐 아니라 피란민 약 10만 명도 함께 배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1년 1월 4일, 중국군과 북한군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서울을 내주고 후퇴했다. 이를 1·4 후퇴라 하며, 이후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밀고 밀리는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2년 넘게 이어진 정전 회담 끝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되었다. 협정은 유엔군·북한군·중국군 대표가 서명했고, 대한민국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전쟁을 끝낸 종전이 아니라 싸움을 멈춘 휴전이었다.
정전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은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게 되었고, 한미 동맹은 정전 이후 한반도 안보의 기본 틀이 되었다.
🕊️ 정전 이후 남북관계
정전은 전쟁을 멈춘 것일 뿐 끝낸 것이 아닙니다. 그 뒤로 남과 북은 대화와 긴장 사이를 오갔습니다 — 공동성명과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 협력, 그리고 다시 이어진 경색까지 사실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통일의 원칙에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을 동시에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을 담아, 냉전 속에서도 남북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
1985년 9월, 남북 적십자의 합의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 처음으로 상봉이 이루어졌다.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40년 만에 다시 만난 이 행사는 이후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1991년 9월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12월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기본합의서에서 양측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합의하여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어 남한 관광객이 배를 타고 북한의 금강산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민간 차원의 대표적인 남북 교류 사업으로, 분단 이후 일반 국민이 북녘 땅을 밟는 길이 처음 열렸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났다. 두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해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고 교류를 넓혀 가기로 합의했다.
2003년 6월 개성공단이 착공되어 2004년부터 본격 가동되었다. 남측의 자본·기술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여러 차례 부침을 겪다가 2016년 가동이 중단되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10·4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6·15 공동선언을 이어받아 경제협력과 평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담았다.
2018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고, 이어 9·19 군사합의로 접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기로 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목표로 남북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해였다.

2019년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남북 대화도 다시 얼어붙었다. 이후 교류가 중단된 채 긴장과 소강이 반복되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 DMZ 이해 — 비무장지대란
DMZ(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 2km, 총폭 약 4km·길이 약 248km의 완충 지대 — 그 핵심 개념을 하나씩 짚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정전협정은 전쟁을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니라 싸움을 잠시 멈춘 것이다. 그래서 남과 북은 법적으로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 협정에는 유엔군·북한군·중국군이 서명했고 한국은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 시험에 자주 나온다.
정전협정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MDL)은 한반도를 가로질러 약 248km 이어진다. 이 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각각 2km씩 물러나 만든 폭 4km의 완충 지대가 비무장지대(DMZ)다. 이름과 달리 세계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긴장된 경계 가운데 하나다.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JSA)은 군사분계선 위에 놓인 유일한 남북 공동 관리 구역으로,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남북 회담과 접촉이 이루어져 온 장소다. 파란 회담장 건물이 분계선을 걸치고 서 있어 분단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은 군사분계선 남쪽 일정 구간에 설정된 출입 제한선으로, 보안을 위해 민간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는다. 임진각 너머 도라전망대·제3땅굴 같은 곳을 가려면 이 선을 넘어야 하므로, 대개 사전 신청과 검문을 거치는 투어로만 방문할 수 있다.
70년 넘게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비무장지대는 뜻밖에도 희귀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의 보고가 되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나고 산양·사향노루 같은 멸종위기종이 서식해, 분단의 상처가 만들어 낸 역설적인 자연 보호구역으로 주목받는다.
📍 방문하기 — DMZ의 현장
분단의 현장은 오늘날 일부 개방되어 방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안보 사정상 지정된 투어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으니, 방문 방식을 함께 확인하세요.

임진강 남쪽에 자리한 임진각은 민간인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최북단 지점으로, DMZ 관광의 출발점이다. 실향민이 북녘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망배단과 전쟁으로 끊어진 자유의 다리, 평화누리 공원이 함께 있어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 더 알아보기

도라전망대는 군사분계선에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망원경으로 북녘의 개성 방향과 기정동 마을, 개성공단 터를 바라볼 수 있다. 분단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DMZ 견학의 대표 코스로 꼽힌다.
📖 더 알아보기

제3땅굴은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 내려온 것으로 밝혀진 땅굴 가운데 하나로, 1978년 발견되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뚫려 있어, 관람객은 지하 통로를 직접 걸어 내려가 분단의 긴장을 실감할 수 있다.
📖 더 알아보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남북 군인이 지척에서 마주 서는 분단의 최전선으로, 정전협정이 조인된 바로 그 장소다. 군사분계선을 걸친 파란 회담장 안에서는 한 발짝 차이로 북한 땅을 밟아 볼 수 있어 가장 상징적인 방문지로 꼽힌다.
📖 더 알아보기

도라산역은 경의선 철도의 남쪽 최북단 역으로, '북으로 가는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라는 문구로 잘 알려져 있다. 남북을 잇는 철길이 다시 이어질 날을 기다리는, 통일의 상징 같은 장소다.
📖 더 알아보기
한국전쟁과 분단, 시험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정전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며 한국은 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 빈출 포인트입니다. 전쟁의 발발·인천상륙작전·중국군 개입·정전선을 근·현대 단원에서 함께 학습하세요.
한국전쟁과 분단 학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