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성보와 초지진
廣城堡배로 들어오면 여기가 먼저다, 그래서 세 번 다 최전선이었다
강화해협은 서울로 들어가는 물길의 입구다. 배를 타고 오는 세력에게는 이곳이 첫 관문이었고, 그래서 조선 말의 세 사건이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됐다. 1866년 병인양요의 프랑스, 1871년 신미양요의 미국, 1875년 운요호 사건의 일본이 차례로 초지진 앞에 나타났다. 광성보는 그중 가장 참혹했던 신미양요의 격전지다.
📖 이야기
지형이 역사를 정한 사례다. 한강 하구로 들어가려면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물길을 지나야 하고, 그 입구에 초지진이 있다. 조선은 효종 대에 이 해협을 따라 진과 보와 돈대를 촘촘히 세웠다. 뿌리는 더 오래됐다.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1233년부터 쌓기 시작한 강화 외성이 그 바탕이고, 숙종 대에 돌로 고쳐 쌓으며 지금의 모습이 됐다. 몽골을 막으려 만든 방어선을 200년 뒤의 조선이 물려받아 서양 함대 앞에 세운 셈이다.
1871년 6월, 미군은 초지진을 함락한 다음 날 광성보로 진격했다. 조선군의 무기는 사거리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휘관 어재연은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했고, 병사들은 대부분 물러서지 않고 죽었다. 미군은 이 전투를 자신들의 승리로 기록했지만 조선의 개항을 얻어 내지 못한 채 물러갔다. 지금 광성보 경내에는 형제를 기리는 쌍충비각과, 이름이 남지 않은 전사자들의 봉분을 모은 신미순의총이 있다. 이름을 남긴 이는 둘이고, 나머지는 무덤 일곱 기로 남았다.
✦ 볼거리
- ›초지진과 노송1656년에 세운 해협 입구의 요새. 복원한 성벽 위에 홍이포가 놓여 있고, 곁에 상흔이 남은 노송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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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는 그 상처를 신미양요 때 포탄에 맞은 자국이라 전한다. 실제로 하나하나가 포탄 자국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나무가 그 자리에서 그 시간을 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초지진은 1866년과 1871년과 1875년에 모두 첫 표적이었다. 세 나라가 같은 지점을 골랐다는 것이 이 자리의 지리를 말해 준다.
- ›안해루와 광성돈대1745년에 세운 광성보의 성문과, 그 안쪽에 자리한 돈대. 해협을 마주 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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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는 해안이나 성벽 요소요소에 둥글게 쌓아 올린 초소 겸 포대다. 강화 해안에는 이런 돈대가 줄지어 있었고, 광성보에도 광성·용두·오두·화도가 딸려 있었다. 문루에 올라 물길을 내려다보면 왜 여기에 이만한 시설을 지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신미양요에서 함께 전사한 어재연·어재순 형제를 기리는 비각과, 이름이 남지 않은 전사자들의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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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수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힌다. 집계 기준이 달라서인데, 그 사실 자체가 당시 조선이 자기 군인의 이름을 온전히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봉분 일곱 기가 나란한 이 자리는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지만, 강화에서 가장 오래 서 있게 되는 곳이다.
-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해협이 가장 좁아지는 물목을 지키던 돈대들. 용두돈대는 바다 쪽으로 길게 돌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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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목은 물살이 험하기로 이름난 구간이다. 뱃길을 안내하던 뱃사공 손돌의 이야기가 이 이름에 얽혀 전한다. 용두돈대까지 걸어 나가면 삼면이 물이고, 배를 타고 올라오는 쪽에서 이 지점이 어떻게 보였을지가 몸으로 느껴진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초지진해협 입구의 요새부터 시작한다. 성벽과 홍이포, 그리고 상흔이 남은 노송을 본다.💡 규모가 크지 않아 30분이면 충분하다.
- 2광성보 안해루차로 이동해 광성보 성문으로 든다. 여기서부터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 초지진에서 약 5km라 걸어서 갈 거리가 아니다.
- 3광성돈대문을 지나 처음 만나는 돈대. 해협이 바로 아래로 보인다.
- 4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어재연 형제의 비각과 무명 전사자들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이 코스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자리다.
- 5손돌목돈대물목이 가장 좁아지는 지점의 돈대. 소나무 길을 지나 오른다.
- 6용두돈대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돈대. 삼면이 물이라 해협 전체가 보인다.💡 광성보의 마지막 지점이자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광성보와 초지진은 해안도로로 약 5km 떨어져 있다. 걸어서 오갈 거리가 아니니 차량이나 버스로 이동할 것.
- 입장료는 각각 1,000원 안팎이고 강화군 통합관람권 제도가 있다. 금액과 적용 범위가 자주 바뀌니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 광성보는 안해루에서 용두돈대까지 해안을 따라 걷는 구조라 왕복 한 시간쯤 잡으면 된다.
-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 신촌·영등포에서 시외버스로 강화터미널까지 온 뒤 다시 이동해야 한다.
- 그늘이 적은 구간이 있어 한여름 낮에는 모자와 물을 챙기는 편이 낫다.
🗺 함께 둘러보기
강화해협은 서울로 드는 물길의 입구여서 조선 말 세 차례의 외세 침입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1866년 병인양요의 프랑스, 1871년 신미양요의 미국, 1875년 운요호 사건의 일본이 차례로 초지진을 먼저 공격했다. 신미양요 때 미군은 초지진을 함락한 뒤 광성보로 진격했고,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비롯한 조선군이 대부분 전사했다. 다만 미국은 조선의 개항을 얻지 못한 채 물러갔고, 흥선대원군은 이 두 사건을 근거로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