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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와 초지진
📷 G41rn8, CC BY-SA 4.0

광성보와 초지진

廣城堡

배로 들어오면 여기가 먼저다, 그래서 세 번 다 최전선이었다

조성 연대초지진 1656년·광성보 1658년 설치. 둘 다 사적🧭 여기 방향 보기

강화해협은 서울로 들어가는 물길의 입구다. 배를 타고 오는 세력에게는 이곳이 첫 관문이었고, 그래서 조선 말의 세 사건이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됐다. 1866년 병인양요의 프랑스, 1871년 신미양요의 미국, 1875년 운요호 사건의 일본이 차례로 초지진 앞에 나타났다. 광성보는 그중 가장 참혹했던 신미양요의 격전지다.

📖 이야기

지형이 역사를 정한 사례다. 한강 하구로 들어가려면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물길을 지나야 하고, 그 입구에 초지진이 있다. 조선은 효종 대에 이 해협을 따라 진과 보와 돈대를 촘촘히 세웠다. 뿌리는 더 오래됐다.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1233년부터 쌓기 시작한 강화 외성이 그 바탕이고, 숙종 대에 돌로 고쳐 쌓으며 지금의 모습이 됐다. 몽골을 막으려 만든 방어선을 200년 뒤의 조선이 물려받아 서양 함대 앞에 세운 셈이다.

1871년 6월, 미군은 초지진을 함락한 다음 날 광성보로 진격했다. 조선군의 무기는 사거리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휘관 어재연은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했고, 병사들은 대부분 물러서지 않고 죽었다. 미군은 이 전투를 자신들의 승리로 기록했지만 조선의 개항을 얻어 내지 못한 채 물러갔다. 지금 광성보 경내에는 형제를 기리는 쌍충비각과, 이름이 남지 않은 전사자들의 봉분을 모은 신미순의총이 있다. 이름을 남긴 이는 둘이고, 나머지는 무덤 일곱 기로 남았다.

볼거리

📷 G41rn8, CC BY-SA 4.0 · Jjw, CC BY-SA 4.0

🚶 혼자 둘러보기 코스

  1. 1초지진
    해협 입구의 요새부터 시작한다. 성벽과 홍이포, 그리고 상흔이 남은 노송을 본다.
    💡 규모가 크지 않아 30분이면 충분하다.
  2. 2광성보 안해루
    차로 이동해 광성보 성문으로 든다. 여기서부터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다.
    💡 초지진에서 약 5km라 걸어서 갈 거리가 아니다.
  3. 3광성돈대
    문을 지나 처음 만나는 돈대. 해협이 바로 아래로 보인다.
  4. 4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
    어재연 형제의 비각과 무명 전사자들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 이 코스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자리다.
  5. 5손돌목돈대
    물목이 가장 좁아지는 지점의 돈대. 소나무 길을 지나 오른다.
  6. 6용두돈대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돈대. 삼면이 물이라 해협 전체가 보인다.
    💡 광성보의 마지막 지점이자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 방문 정보

관람 시간
09:00~18:00 (광성보·초지진 각각)
휴무
연중무휴
요금
각각 어른 1,000원 안팎. 강화군 통합관람권 제도가 있어 금액과 적용 범위가 자주 바뀌니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가는 법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 신촌·영등포에서 시외버스로 강화터미널까지 온 뒤 군내버스나 택시로 이동한다 (노선 개편이 잦아 현장에서 확인할 것).
2026-09 기준

💡 알아두면 좋은 팁

🗺 함께 둘러보기

전등사차로 이동
삼랑성에 둘러싸인 절. 1866년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곳이다.
고려궁지와 강화산성차로 이동
고려가 39년간 수도로 삼았던 자리이자 외규장각이 불탄 곳.
강화해협 해안도로차로 이동
초지진과 광성보를 잇는 길. 물길과 돈대들이 나란히 이어진다.
📚 한능검 포인트

강화해협은 서울로 드는 물길의 입구여서 조선 말 세 차례의 외세 침입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됐다. 1866년 병인양요의 프랑스, 1871년 신미양요의 미국, 1875년 운요호 사건의 일본이 차례로 초지진을 먼저 공격했다. 신미양요 때 미군은 초지진을 함락한 뒤 광성보로 진격했고,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을 비롯한 조선군이 대부분 전사했다. 다만 미국은 조선의 개항을 얻지 못한 채 물러갔고, 흥선대원군은 이 두 사건을 근거로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