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등사
傳燈寺산성이 절을 감싼 곳, 실록을 지켜 낸 자리
전등사는 절을 산성이 통째로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흔치 않다. 그 산성이 삼랑성이고,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곳이다. 성 안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가 있었으니, 이 승리는 곧 실록을 지킨 승리이기도 했다. 창건은 381년 아도화상이라 전하지만 뒷받침할 당대 기록은 없다.
📖 이야기
처음 이름은 진종사였다. 전등사가 된 것은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시주한 뒤부터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이다. 원 간섭기의 왕비가 절에 등을 바치고 그 등이 절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고려 말 불교가 왕실과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지금 서 있는 대웅보전은 1615년에 짓기 시작해 1622년에 마쳤다.
1866년 가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는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병력을 이끌고 밤에 강화해협을 건너 삼랑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을 방패 삼은 조선군과 성 밖의 프랑스군이 부딪쳤고, 프랑스군은 물러났다. 이 전투가 병인양요의 흐름을 돌려세웠다. 성 안 정족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무사했던 것도 이 승리 덕분이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 하나가 살아남아 실록이 이어졌듯, 강화에서는 성벽 하나가 그 일을 했다.
✦ 볼거리
- ›대웅보전1615년에 짓기 시작해 1622년에 완성한 법당.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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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대의 화재 뒤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조선 중기 목조 건축의 짜임을 보여 주는 사례로 다뤄지며, 안팎의 장식이 촘촘하다. 처마 네 귀퉁이를 올려다보는 것을 잊지 말 것. 거기에 이 절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은 목각상이 있다.
- ›나부상대웅보전 처마 네 귀퉁이에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사람 모양의 목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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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자기를 배신하고 달아난 여인을 조각해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게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불법을 지키는 나찰이나 원숭이를 새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네 귀퉁이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자세는 같다.
- ›범종종각 안에 걸린 보물.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이 이 절에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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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에 흔한 음통과 비천상이 없고 몸통에 격자 문양이 둘린 형태라, 옆에 놓고 보면 생김새가 눈에 띄게 다르다. 일제강점기에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돌아온 내력이 전하는데 세부는 자료마다 갈린다. 종각이 잠겨 있어 살창 너머로 보게 된다.
- ›삼랑성과 정족산사고 터절을 감싼 산성. 성 안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와 왕실 족보를 두던 선원보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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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는 단군이 세 아들에게 쌓게 해 삼랑성이라 했다는 전승이 실려 있다. 이름은 세 봉우리가 솥발 같다 하여 정족산이라 부른 데서도 왔다. 실록은 17세기 중엽 마니산사고에서 이곳으로 옮겨졌고, 1866년 양헌수의 승리가 그 책들을 지켰다.
- ›양헌수 승전비1866년 정족산성 전투를 기리는 비. 성곽길 동문 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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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는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간 사건으로 먼저 기억되지만, 군사적으로는 조선이 물러서게 만든 전투가 여기서 있었다. 강화 여행에서 고려궁지의 약탈과 이 비의 승리를 함께 보면 그해 가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한 줄로 이어진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남문(종해루) 또는 동문삼랑성 성문을 지나 절로 든다. 절이 아니라 성으로 먼저 들어간다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다.💡 동문 쪽이 주차장에서 가깝고, 남문 쪽이 성곽길 걷기에 좋다.
- 2대조루대웅보전 앞을 막아선 누각. 아래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선다.
- 3대웅보전절의 중심 법당. 마당에 서서 처마 네 귀퉁이의 나부상을 찾아본다.💡 네 귀퉁이 모두에 있으니 한 바퀴 돌면서 볼 것.
- 4약사전과 범종각대웅보전 옆의 보물 전각과, 살창 너머로 보이는 범종.
- 5정족산사고 터실록을 보관하던 자리. 지금은 복원된 건물이 서 있다.💡 여기가 1866년에 지켜 낸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인상이 달라진다.
- 6삼랑성 성곽길과 양헌수 승전비성벽을 따라 걷다 승전비에 이른다. 절과 전투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성곽길은 흙길 구간이 있어 신발을 고려할 것.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절보다 성문을 먼저 지난다. 삼랑성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 입장료는 4,000원 안팎이고 변동이 있으니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 창건 381년은 전승이다. '현존 최고 사찰'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게 되지만 뒷받침할 당대 기록은 없다.
-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로 강화터미널까지 온 뒤 다시 이동해야 한다.
- 성곽길을 함께 걸으면 두 시간쯤 잡는 것이 좋다. 절만 보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 함께 둘러보기
전등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소재는 1866년 병인양요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간 이 사건에서, 양헌수가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병력을 이끌고 삼랑성(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성 안 정족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지켜진 것도 이 승리 덕분이다. 절 이름은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한 데서 왔으며, 대웅보전과 약사전, 범종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