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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 Mobius6, CC BY-SA 4.0

전등사

傳燈寺

산성이 절을 감싼 곳, 실록을 지켜 낸 자리

조성 연대381년 창건 전승, 1282년 전등사로 개칭🧭 여기 방향 보기

전등사는 절을 산성이 통째로 감싸고 있다는 점에서 흔치 않다. 그 산성이 삼랑성이고,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곳이다. 성 안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가 있었으니, 이 승리는 곧 실록을 지킨 승리이기도 했다. 창건은 381년 아도화상이라 전하지만 뒷받침할 당대 기록은 없다.

📖 이야기

처음 이름은 진종사였다. 전등사가 된 것은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시주한 뒤부터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이다. 원 간섭기의 왕비가 절에 등을 바치고 그 등이 절의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고려 말 불교가 왕실과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지금 서 있는 대웅보전은 1615년에 짓기 시작해 1622년에 마쳤다.

1866년 가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다. 양헌수는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병력을 이끌고 밤에 강화해협을 건너 삼랑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을 방패 삼은 조선군과 성 밖의 프랑스군이 부딪쳤고, 프랑스군은 물러났다. 이 전투가 병인양요의 흐름을 돌려세웠다. 성 안 정족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무사했던 것도 이 승리 덕분이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 하나가 살아남아 실록이 이어졌듯, 강화에서는 성벽 하나가 그 일을 했다.

볼거리

📷 G41rn8, CC BY-SA 4.0 · Mobius6, CC BY-SA 4.0

🚶 혼자 둘러보기 코스

  1. 1남문(종해루) 또는 동문
    삼랑성 성문을 지나 절로 든다. 절이 아니라 성으로 먼저 들어간다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다.
    💡 동문 쪽이 주차장에서 가깝고, 남문 쪽이 성곽길 걷기에 좋다.
  2. 2대조루
    대웅보전 앞을 막아선 누각. 아래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선다.
  3. 3대웅보전
    절의 중심 법당. 마당에 서서 처마 네 귀퉁이의 나부상을 찾아본다.
    💡 네 귀퉁이 모두에 있으니 한 바퀴 돌면서 볼 것.
  4. 4약사전과 범종각
    대웅보전 옆의 보물 전각과, 살창 너머로 보이는 범종.
  5. 5정족산사고 터
    실록을 보관하던 자리. 지금은 복원된 건물이 서 있다.
    💡 여기가 1866년에 지켜 낸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인상이 달라진다.
  6. 6삼랑성 성곽길과 양헌수 승전비
    성벽을 따라 걷다 승전비에 이른다. 절과 전투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 성곽길은 흙길 구간이 있어 신발을 고려할 것.

🧭 방문 정보

관람 시간
09:00 무렵부터 해 질 때까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휴무
연중무휴
요금
어른 4,000원 안팎 (변동이 있어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삼랑성 입장과 함께 받는다.
가는 법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 신촌·영등포에서 시외버스로 강화터미널까지 온 뒤 군내버스나 택시로 이동한다 (노선 개편이 잦아 현장에서 확인할 것).
2026-09 기준

💡 알아두면 좋은 팁

🗺 함께 둘러보기

고려궁지와 강화산성차로 이동
고려가 39년간 수도로 삼았던 자리.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이 불탄 곳이기도 하다.
광성보와 초지진차로 이동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들. 같은 시기 외세와 맞선 자리다.
삼랑성 성곽길경내
절을 감싼 성벽을 따라 걷는 길. 경내에서 바로 이어진다.
📚 한능검 포인트

전등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소재는 1866년 병인양요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고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간 이 사건에서, 양헌수가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병력을 이끌고 삼랑성(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성 안 정족산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지켜진 것도 이 승리 덕분이다. 절 이름은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한 데서 왔으며, 대웅보전과 약사전, 범종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