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과 광장시장
쇼핑의 거리와 백 년 시장, 서울의 두 얼굴
명동은 유동인구와 땅값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거리다. 화장품 가게가 줄지어 선 골목은 외국인에게 K뷰티 쇼핑 1번지로 통하고, 그 한복판에 1898년 축성된 붉은 벽돌 명동성당이 언덕 위에 서 있다. 지하철로 열 몇 분 거리에는 1905년에 문을 연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 광장시장이 있어, 빈대떡 부치는 소리와 육회 접시 사이로 하루 6만 5천 명이 오간다. 새것의 명동과 오래된 것의 광장 — 두 곳을 하루에 잇는 것이 서울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 이야기
명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명례방(明禮坊)이었다. 청계천 남쪽의 이른바 남촌으로, 벼슬길이 넉넉지 않은 선비들이 모여 살던 조용한 주택가였다. 이 동네가 상업지로 뒤바뀐 것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인 거류지가 남촌 일대로 퍼지면서 명례방은 '명치정(明治町)'이라는 이름의 번화가가 되었고, 광복 후 그 이름을 털어내고 오늘의 명동이 되었다.
그 언덕 위에 선 명동성당은 1892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8년 5월 29일 축성됐다. 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 성당이 한국인의 기억에 새겨진 것은 건축이 아니라 1987년이다. 그해 5월 18일 추도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가 폭로됐고,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성당은 시위대의 농성장이자 피난처가 되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다.
광장시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맞섰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 자본은 남대문시장을 장악했고 화폐정리사업으로 조선 상인의 자금줄을 죄어 왔다. 이에 김종한·박승직 등 조선인 상인들이 자본을 모아 1905년 7월 광장주식회사를 세우고 상설시장을 열었으니,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이다. 이름은 청계천의 광교(廣橋)와 장교(長橋) 사이라는 뜻의 '광장(廣長)'에서 왔고 뒤에 지금의 '광장(廣藏)'으로 굳었다. 창립자 가운데 박승직은 훗날 두산의 창업주가 되는 인물이다. 오늘 이곳은 점포 약 5,000개가 들어찬 먹자골목으로 더 유명하다 — 빈대떡과 육회, 꼬마김밥(이른바 '마약김밥')의 발상지, 그리고 한복과 포목, 2층의 구제상가까지. 명동에서 K뷰티를 담고 광장시장에서 저녁을 먹는 하루가, 백이십 년을 가로지른다.
✦ 볼거리
- ›명동성당1898년 축성된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 붉은 벽돌 고딕 건물이 명동 언덕 위에 서 있으며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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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기공해 6년 만에 완성됐고, 설계는 코스트 신부가 맡았다. 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리는 것은 1987년 때문이다 — 그해 5월 18일 추도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가 폭로되면서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고, 항쟁 기간 내내 성당 마당은 시위대의 농성장이자 피난처였다. 지금도 미사가 열리는 살아 있는 성당이니, 전례 중에는 조용히 둘러보자.
- ›명동 거리와 K뷰티유동인구와 지가가 전국 최고인 거리. 화장품·패션 매장이 촘촘히 들어차 외국인 여행자의 K뷰티 쇼핑 1번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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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살던 명례방의 조용한 골목이었고, 일제강점기에 '명치정'이라는 상업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의 거리 구조가 만들어졌다. 골목마다 이름을 아는 화장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이 이어지고, 해가 지면 노점 포장마차가 도로 가운데로 나와 또 하나의 거리를 만든다.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간판과 불빛이 만드는 밀도 자체가 볼거리다.
- ›광장시장 먹자골목빈대떡·육회·칼국수·꼬마김밥이 늘어선 시장 한복판의 노점 골목. 하루 약 6만 5천 명이 찾는 서울의 대표 먹거리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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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를 갈아 두툼하게 부쳐 내는 빈대떡이 이 골목의 간판 메뉴이고, 한 입 크기 꼬마김밥은 '마약김밥'이라는 별명이 붙은 채 이곳에서 시작됐다. 여기에 육회와 칼국수까지, 접시 하나를 시켜 좁은 자리에서 먹고 옆집으로 옮겨 가는 방식이라 여럿이 가면 서로 다른 집에서 한 접시씩 사 나눠 먹는 편이 낫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열지만 점포마다 시간이 달라, 늦은 밤에는 문 닫은 집이 섞여 있다.
- ›한복·포목상가와 2층 구제상가먹자골목 바깥은 원래의 광장시장이다. 한복과 포목을 파는 점포가 구역을 이루고, 2층에는 빈티지 옷을 파는 구제상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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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개설 당시부터 광장시장의 본업은 포목이었다. 지금도 한복과 원단을 찾는 손님이 이 구역을 채우고 있어, 관광객이 몰리는 먹자골목과는 전혀 다른 시장의 얼굴을 볼 수 있다. 2층은 빈티지 옷을 파는 구제상가다 — 백 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파는 물건을 바꿔 가며 살아남은 시장의 최신판인 셈이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명동성당명동역 8번 출구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8분쯤 오르면 붉은 벽돌 성당이 나온다. 1898년 축성된 한국 최초의 본당이자 1987년 6월 항쟁의 무대 — 언덕 위라 명동 거리를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하기 좋다.💡 미사가 진행 중이면 조용히 둘러보고, 성당 마당에서 명동 쪽 전망을 한 장 남기자.
- 2명동 거리성당에서 내려오면 화장품·패션 매장이 빼곡한 거리가 시작된다. 조선의 명례방, 일제강점기의 '명치정'을 거쳐 지금은 전국에서 지가가 가장 높은 상권이 된 골목이다.💡 해가 지면 도로 가운데로 포장마차가 나온다 — 광장시장에서 먹을 배는 남겨 두자.
- 3광장시장으로 이동명동역에서 지하철로 약 11분이면 1호선 종로5가역에 닿는다. 시간이 넉넉하면 걸어서 20~25분, 청계천을 따라 걷는 길을 택해도 좋다.💡 종로5가역 8번 출구로 나오면 시장 입구가 바로다.
- 4광장시장 먹자골목시장 한복판의 노점 골목. 빈대떡을 부치는 철판과 육회 접시, 꼬마김밥이 늘어선 통로를 천천히 걸으며 한 접시씩 고르면 된다.💡 점포 약 5,000개에 하루 6만 5천 명이 오간다 — 통로가 좁으니 가방은 앞으로 메자.
- 5한복·포목상가와 2층 구제상가먹자골목을 빠져나오면 1905년 개설 당시의 본업이었던 포목·한복 점포 구역이 이어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빈티지 옷을 파는 구제상가가 나온다.
- 6청계천 새벽다리시장 남쪽으로 나서면 바로 청계천이다. 물가로 내려서면 시장의 소음이 한 단 아래로 가라앉는데, 시장 이름 '광장'이 바로 이 하천의 광교와 장교 사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걷기 좋은 마무리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광장시장의 일반 상가는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 간다면 연중무휴인 먹자골목 위주로 계획을 세우자.
- 먹자골목은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열지만 점포마다 시간이 달라, 아주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는 문 닫은 집이 섞여 있다. 특정 가게를 노린다면 낮~저녁 사이가 안전하다.
- 명동성당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지금도 미사가 열리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이다. 전례 중에는 조용히 움직이고 촬영은 삼가자.
- 두 곳은 지하철로 약 11분, 걸어서 20~25분 거리다. 오전에 명동, 저녁에 광장시장 순서로 잡으면 저녁 식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함께 둘러보기
광장시장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 자본의 경제 침탈에 맞선 조선 상인의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다 — 일본이 남대문시장을 장악하고 화폐정리사업으로 조선 상인의 자금을 죄자, 김종한·박승직 등이 1905년 7월 광장주식회사를 세워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시장을 열었다(을사조약보다 앞선다는 점에 유의). 명동성당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폭로와 6월 항쟁의 무대로, 개항기 경제 침탈과 현대 민주화운동을 한자리에서 묶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