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미도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유원지가 된 그린 비치, 그리고 남은 이름들
월미도는 놀이기구 소리와 회 냄새가 먼저 반기는 바닷가 거리다. 그런데 지금 관람차가 도는 이 자리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 지점, 코드명 그린 비치였다. 놀이와 전쟁이 한 장소에 겹쳐 있다는 사실이 이 섬 아닌 섬의 성격을 만든다. 하나 미리 알아 둘 것이 있는데, 이름이 함께 불리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월미도가 아니라 8km 남짓 떨어진 연수구 청량산 자락에 있다. 두 곳을 함께 보려면 이동 시간을 따로 잡아야 한다.
📖 이야기
월미도는 원래 섬이었다. 1906년 인천역과 철로로 이어졌고 1917년 방파제가 놓이면서 완전히 육지가 되었으니, 지금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백여 년 전의 공사 덕분이다. 이 작은 땅의 이력은 놀랄 만큼 이르다. 1656년 효종 때 월미행궁이 있었고,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 때 프랑스와 미국 함대가 여기에 정박했으며, 1882년에는 일본이 행궁 터에 석탄창고를 지었다. 1918년에는 유원지로 지정되고 1923년 해수를 데운 월미조탕이 문을 열어, 식민지 시기 내내 경성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놀러 오는 곳이 되었다. 군사 요충이면서 놀이터라는 이중성이 이때 이미 시작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은 크로마이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에 상륙했다. 함정 261척과 병력 약 75,000명이 동원되었고, 총사령관은 더글러스 맥아더였다. 상륙 해안은 셋으로 나뉘어 월미도가 그린 비치, 만석동 일대가 레드 비치, 남쪽이 블루 비치였다. 이 작전의 성공 조건이자 최대 위험은 인천 앞바다의 조수 간만 차였다. 최대 10m에 이르러 썰물이면 2~5km의 갯벌이 드러나기 때문에, 상륙정이 뜰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 몇 시간뿐이었다. 상륙은 성공했고 유엔군은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함께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상륙 닷새 전인 1950년 9월 10일부터 12일 사이, 상륙 준비를 위한 폭격으로 월미도에 살던 민간인 약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섬에는 120가구 남짓, 600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고, 2004년부터 귀향대책위원회의 농성이 이어졌으며,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렸다. 작전의 군사적 평가와 이 피해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우지 않는다. 월미공원 한쪽에는 이를 기리는 위령비가 서 있다. 미군이 주둔하던 이곳이 다시 시민에게 열린 것은 2001년, 군이 떠나면서였다.
✦ 볼거리
- ›월미 문화의거리1989년 문을 연 바닷가 보행 거리. 횟집과 조개구이집, 놀이기구가 늘어서 있고 그 위로 월미바다열차 궤도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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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람차와 바이킹이 있는 이 일대가 상륙 지점 그린 비치였다. 그 사실을 알고 걸으면 같은 거리가 다르게 읽힌다. 주말 저녁이면 거리 공연이 열리고, 바다 쪽으로는 인천항을 드나드는 큰 배들이 지난다. 유원지의 소음과 항구의 크레인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풍경은 인천에서 여기밖에 없다.
- ›월미공원2001년 군이 떠나면서 시민에게 열린 산책 공원. 반세기 동안 통제 구역이었던 덕분에 숲이 잘 남았고, 전망대에서 인천항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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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한국전통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궁궐 정원과 민가 정원의 양식을 함께 볼 수 있고, 한쪽에는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주민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 정상 전망대까지는 완만한 산책로로 20분 남짓이면 오른다. 관람차 소리가 멀어지는 지점부터 이 땅이 오랫동안 군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 ›월미바다열차월미도를 한 바퀴 도는 6.1km 순환 모노레일. 2019년 개통했고 한 바퀴에 약 42분, 높은 궤도에서 인천항과 갯벌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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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선에는 사연이 있다. 2008년 월미은하레일이라는 이름으로 착공했지만 안전 문제로 개통하지 못한 채 오래 멈춰 있었고, 11년이 지난 2019년에야 월미바다열차로 다시 열렸다. 천천히 달리는 열차라 사진 찍기 좋고, 인천역과 문화의거리, 월미공원을 잇기 때문에 걷기 부담스러운 날의 이동 수단으로도 쓸 만하다. 요금과 운행 시간은 시기에 따라 바뀌므로 현장 안내를 확인하자.
- ›인천상륙작전기념관1984년 작전 34주년에 맞춰 문을 연 기념관. 두 개의 실내 전시관과 참전국 국기 게양대, 전차와 상륙장갑차가 놓인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람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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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다시 강조해 둔다. 이 기념관은 월미도가 아니라 연수구 청량로에 있고, 월미도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걸린다. 야외전시장에는 6·25에 참전한 나라들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어, 이 전쟁이 국제전이었다는 사실이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언덕 위라 전시관 앞에서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데, 작전이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 조망이 대신 설명해 준다.
- ›월미도 원주민 위령비1950년 9월 상륙 준비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주민들을 기리는 비. 작전의 성공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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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월미도에는 120가구 남짓, 600명 정도가 살고 있었고 약 1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주민들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2004년부터 귀향대책위원회의 오랜 활동이 이어졌고,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결론을 냈다. 놀이기구 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몇 분만 올라오면 되는 자리이니, 월미도에 왔다면 한 번은 들러 볼 만하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인천역에서 월미도로1호선 종착역인 인천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10분 남짓이면 바다에 닿는다. 월미바다열차를 타면 이동 자체가 관람이 된다.
- 2월미 문화의거리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보행 거리. 지금 놀이기구가 선 이 자리가 상륙 지점 그린 비치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걷는다.💡 저녁에는 인천항으로 드나드는 배의 불빛이 함께 보인다.
- 3월미공원과 한국전통정원2001년 개방된 숲길과 전통정원. 반세기 군의 통제 구역이었던 덕에 나무가 굵다.
- 4월미도 원주민 위령비폭격으로 희생된 주민들을 기리는 자리. 이 코스에서 가장 조용한 몇 분을 여기에 쓰기를 권한다.
- 5월미공원 전망대완만한 산책로로 20분쯤 오르면 인천항과 갯벌, 인천대교 방향까지 트인다. 상륙작전을 어렵게 만든 갯벌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자리다.💡 썰물 때 가면 갯벌이 얼마나 넓게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 6인천상륙작전기념관 (별도 이동)연수구 청량산 자락으로 이동해 야외전시장과 두 전시관을 본다. 무료이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월미도에서 30분 이상 걸리니 오전과 오후로 나눠 잡는 편이 낫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가장 흔한 오해부터 정리하자.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월미도에 없다. 연수구 청량로에 있어 월미도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걸리므로, 두 곳을 같은 날 보려면 이동 시간을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한다.
- 썰물 시간을 확인하고 가면 좋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수 킬로미터씩 드러나는데, 이것이 바로 상륙작전을 몇 시간짜리 도박으로 만든 조건이었다. 눈으로 보면 설명이 필요 없다.
- 월미도는 저녁이 좋다. 낮에는 유원지의 성격이 강하지만 해가 지면 항구의 불빛과 조명이 켜진 관람차가 함께 보인다. 회와 조개구이 골목도 이때부터 붐빈다.
- 기념관 관람은 무료이지만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월미도만 보는 날이라면 요일과 무관하지만, 기념관까지 계획했다면 월요일은 피하자.
🗺 함께 둘러보기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 작전명 크로마이트)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전세를 뒤집은 전환점으로, 9월 28일 서울 수복으로 이어졌다는 흐름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자주 나온다. 인천 앞바다의 큰 조수 간만 차 때문에 상륙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함께 정리해 두면 좋다. 작전 준비 폭격으로 월미도 주민이 희생된 사실은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