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 — 조선 왕조 500년의 무대가 된 다섯 궁궐을 창건 연도, 대표 전각, 관람 정보, 그리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포인트까지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 궁궐 카드
📷 kallerna, CC BY-SA 4.0
경복궁景福宮
1395년 창건조선의 법궁(정궁)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뒤 지은 법궁으로, 궁과 주요 전각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273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1867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앞마당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고 전각 대부분이 헐렸다. 1990년대부터 복원 사업이 이어져 광화문·근정전·경회루 등이 되살아났고, 오늘날 서울을 대표하는 궁궐로 관람객을 맞는다.
›근정전 — 국왕의 즉위식과 조회 등 국가 의식을 치른 정전으로, 현존하는 목조 건물 가운데 규모가 크다.
›경회루 — 연못 위에 세운 누각으로 나라의 경사나 외국 사신을 맞을 때 연회를 열던 곳이다.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때 가장 먼저 재건되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약 270년 동안 조선의 실질적 법궁 역할을 하였다.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앉힌 전각 배치와, 왕실의 정원인 후원(비원)의 조경이 특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인정전 — 창덕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공식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후원 —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꾸민 왕실의 정원으로 부용지·주합루 등이 있으며, 비원이라고도 부른다.
›돈화문 — 창덕궁의 정문으로,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낙선재 —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생활 공간으로, 조선 왕실의 마지막 사람들이 머물렀다.
1483년 성종이 세 분의 대비(할머니와 어머니들)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자리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과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궁궐의 위상을 잃었다. 1983년부터 동물원 등을 옮기고 복원하여 본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았다.
본래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모두 불타자, 1593년 선조가 임시 거처(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궁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광해군 때 경운궁으로 이름 붙였다.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이곳으로 환궁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궁이 되었다. 서양식 석조 건물인 석조전과 전통 전각이 함께 있는 근대 궁궐이다.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광해군 때인 1616년 무렵 이궁으로 창건하였으며,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이라 불렸다. 인조 이후 여러 왕이 머물며 동궐인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조선 후기 궁궐의 한 축을 이루었다. 한때 100채가 넘는 전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헐리고 그 자리에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궁궐이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숭정전 등 일부만 복원되어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