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궁지와 강화산성
高麗宮址39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던 자리,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유
몽골이 쳐들어오자 고려는 1232년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고,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갈 때까지 39년 동안 이 언덕이 고려의 궁궐 자리였다. 다만 먼저 알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여기에 고려 건물은 한 채도 없다.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모두 헐렸기 때문이다. 지금 서 있는 것은 조선의 관아 건물들과 2003년에 복원한 외규장각이다.
📖 이야기
1232년의 천도는 도망이면서 동시에 전략이었다. 몽골 기병은 초원과 평야에서 무적이었지만 배는 다루지 못했다. 최씨 무신정권은 그 약점 하나에 나라를 걸고 바다 건너 13km 남짓한 섬으로 조정을 옮겼고, 실제로 강화도는 39년 동안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육지의 백성들이 여섯 차례의 침입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동안 조정은 이 섬에서 버텼다. 그 시간에 팔만대장경이 조판됐다.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발원이었고, 동시에 아직 나라가 살아 있음을 안팎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몽골은 강화의 성과 궁궐을 헐라고 요구했다. 다시는 이 섬으로 도망칠 수 없게 만들려는 조치였고, 고려는 따랐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터만 남았다. 삼별초가 환도에 반발해 진도와 제주로 옮겨 가며 항쟁을 이어간 것이 이때다. 조선은 같은 자리에 강화유수부의 관아를 세웠고, 정조는 왕실 서적을 보관할 외규장각을 두었다. 그리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그 책들을 실어 가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한 언덕이 두 번, 서로 다른 외세에게 같은 방식으로 지워진 셈이다.
✦ 볼거리
- ›승평문과 빈 터정문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고려 궁궐의 흔적은 이 비어 있음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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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건물을 찾아다니다 보면 이 공백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1270년에 헐리지 않았다면 여기 무엇이 서 있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이 유적을 보는 방법에 가깝다. 개경 환도의 조건이 성과 궁궐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남아 있는 어떤 건물보다 그 시대를 정확히 말해 준다.
- ›강화유수부 동헌1638년에 고쳐 지은 조선 시대 강화의 행정 청사. 편액에 '명위헌(明威軒)'이라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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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부는 옛 도읍이나 군사 요충지에 두던 특별 행정구역이다. 강화가 유수부였다는 사실 자체가 조선이 이 섬을 어떻게 봤는지를 말해 준다. 수도 방어의 마지막 보루이자, 유사시 임금이 피란할 곳이었다. 실제로 인조는 병자호란 때 강화로 가려다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 ›외규장각정조가 왕실 서적을 보관하려 세운 서고. 1866년 병인양요 때 불탔고, 2003년에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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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이 가져간 의궤는 2011년에 돌아왔다. 다만 형식은 반환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하는 대여다. 실질적으로는 영구 반환에 가깝다고 보지만 소유권 문제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한 나라가 빼앗긴 자기 기록을 되찾는 데 145년이 걸렸고, 그마저 빌리는 형식이었다는 사실이 이 건물 안에 함께 놓여 있다.
- ›강화산성고려 천도기의 성이 뿌리이고 조선 숙종 때 지금 규모로 고쳐 쌓았다. 고려궁지 북쪽 언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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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기에는 내성·중성·외성을 겹으로 둘렀다고 전한다. 세부 연표는 자료마다 갈리지만, 섬 하나를 요새로 만들려 한 규모만은 분명하다. 지금 걸을 수 있는 것은 조선 성곽이고, 북문 쪽으로 오르면 강화 읍내와 그 너머 바다가 함께 보인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승평문고려궁지의 정문. 여기서부터 잔디밭이 언덕 위로 열린다.💡 강화터미널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다.
- 2동헌(명위헌)조선 강화유수부의 청사. 편액 글씨를 확인하고 들어가면 좋다.
- 3이방청1654년에 지은 관아 부속 건물. 실무를 보던 곳이다.
- 4외규장각언덕 위쪽에 단청을 올린 채로 복원되어 있다. 편액에 '外奎章閣'이라 적혔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라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 5강화산성 북문 방면고려궁지 뒤로 이어지는 성곽길. 성벽을 따라 오르면 읍내와 바다가 함께 들어온다.💡 여기부터는 무료이고 시간 제한이 없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고려 건물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한다. 1270년 개경 환도 때 몽골의 요구로 전부 헐렸고, 남은 것은 터와 조선 건물이다.
-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 신촌·영등포에서 시외버스로 한 시간 반 남짓 걸린다.
- 입장료는 1,000원 안팎이고 강화군 통합권 제도가 있다. 금액과 적용 범위가 자주 바뀌니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 고려궁지 자체는 넓지 않아 30분이면 충분하다. 강화산성 성곽길을 얼마나 걸을지로 전체 시간이 정해진다.
🗺 함께 둘러보기
1232년 강화 천도는 최씨 무신정권이 몽골에 맞선 방식이었다. 기병에 강한 몽골이 바다를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강화도는 39년 동안 함락되지 않았고 그사이 팔만대장경이 조판되었다. 1270년 개경 환도 때 몽골의 요구로 성과 궁궐이 헐렸으며, 이에 반발한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로 근거지를 옮겨 항쟁을 이어갔다. 조선에 들어와 이 자리에는 강화유수부 관아와 외규장각이 세워졌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