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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와 강화산성
📷 Mobius6, CC BY-SA 4.0

고려궁지와 강화산성

高麗宮址

39년 동안 고려의 수도였던 자리,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유

조성 연대1232년 강화 천도, 1234년 궁궐 조성. 사적🧭 여기 방향 보기

몽골이 쳐들어오자 고려는 1232년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고,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갈 때까지 39년 동안 이 언덕이 고려의 궁궐 자리였다. 다만 먼저 알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여기에 고려 건물은 한 채도 없다. 환도할 때 몽골의 요구로 모두 헐렸기 때문이다. 지금 서 있는 것은 조선의 관아 건물들과 2003년에 복원한 외규장각이다.

📖 이야기

1232년의 천도는 도망이면서 동시에 전략이었다. 몽골 기병은 초원과 평야에서 무적이었지만 배는 다루지 못했다. 최씨 무신정권은 그 약점 하나에 나라를 걸고 바다 건너 13km 남짓한 섬으로 조정을 옮겼고, 실제로 강화도는 39년 동안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육지의 백성들이 여섯 차례의 침입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동안 조정은 이 섬에서 버텼다. 그 시간에 팔만대장경이 조판됐다.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발원이었고, 동시에 아직 나라가 살아 있음을 안팎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몽골은 강화의 성과 궁궐을 헐라고 요구했다. 다시는 이 섬으로 도망칠 수 없게 만들려는 조치였고, 고려는 따랐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터만 남았다. 삼별초가 환도에 반발해 진도와 제주로 옮겨 가며 항쟁을 이어간 것이 이때다. 조선은 같은 자리에 강화유수부의 관아를 세웠고, 정조는 왕실 서적을 보관할 외규장각을 두었다. 그리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그 책들을 실어 가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한 언덕이 두 번, 서로 다른 외세에게 같은 방식으로 지워진 셈이다.

볼거리

📷 Mobius6, CC BY-SA 4.0

🚶 혼자 둘러보기 코스

  1. 1승평문
    고려궁지의 정문. 여기서부터 잔디밭이 언덕 위로 열린다.
    💡 강화터미널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다.
  2. 2동헌(명위헌)
    조선 강화유수부의 청사. 편액 글씨를 확인하고 들어가면 좋다.
  3. 3이방청
    1654년에 지은 관아 부속 건물. 실무를 보던 곳이다.
  4. 4외규장각
    언덕 위쪽에 단청을 올린 채로 복원되어 있다. 편액에 '外奎章閣'이라 적혔다.
    💡 경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라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5. 5강화산성 북문 방면
    고려궁지 뒤로 이어지는 성곽길. 성벽을 따라 오르면 읍내와 바다가 함께 들어온다.
    💡 여기부터는 무료이고 시간 제한이 없다.

🧭 방문 정보

관람 시간
09:00~18:00 (강화산성 성곽길은 상시 개방)
휴무
연중무휴
요금
어른 1,000원 안팎. 강화군 통합관람권 제도가 있어 금액과 적용 범위가 자주 바뀌니 매표소에서 확인할 것. 강화산성은 무료.
가는 법
강화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 신촌·영등포에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30분, 강화터미널에서 도보권이다 (노선 개편이 잦아 현장에서 확인할 것).
2026-09 기준

💡 알아두면 좋은 팁

🗺 함께 둘러보기

전등사차로 이동
삼랑성에 둘러싸인 절. 정족산사고와 병인양요 승전지가 함께 있다.
광성보와 초지진차로 이동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차로 이동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탁자식 고인돌. 강화 북쪽에 있다.
📚 한능검 포인트

1232년 강화 천도는 최씨 무신정권이 몽골에 맞선 방식이었다. 기병에 강한 몽골이 바다를 다루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강화도는 39년 동안 함락되지 않았고 그사이 팔만대장경이 조판되었다. 1270년 개경 환도 때 몽골의 요구로 성과 궁궐이 헐렸으며, 이에 반발한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로 근거지를 옮겨 항쟁을 이어갔다. 조선에 들어와 이 자리에는 강화유수부 관아와 외규장각이 세워졌고,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