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왕건(918)은 후백제와의 20년 각축 끝에 후삼국을 통일합니다(936). 신라의 통일과 달리 발해 유민까지 포용한 민족의 재통일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 통일 과정 — 공산 전투(927, 대구 — 견훤에 대패, 신숭겸 전사) → 고창 전투(930, 안동 — 승기 역전) →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유폐됐다 탈출해 고려 귀순(935) → 신라 경순왕의 평화적 항복(935,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일리천 전투(936)로 후백제 멸망.
- 민족 재통일 — 거란에 멸망한 발해의 세자 대광현이 유민 수만을 이끌고 귀순 → 왕씨 성을 내리고 우대. 고구려 계승 의식(국호 '고려', 서경 중시)과 함께 고려 정통성의 근거.
- 태조의 3대 정책 — ① 호족 통합: 혼인 정책(부인 29명)·사성 정책(왕씨 하사) + 견제: 사심관 제도(중앙 고관을 출신지 책임자로)·기인 제도(호족 자제를 수도에 — 신라 상수리 계승) ② 민생 안정: 취민유도(세금 1/10), 흑창(빈민 구휼) ③ 북진 정책: 서경(평양) 중시, 청천강~영흥만 확보, 거란 강경책(만부교 사건 — 거란이 보낸 낙타를 굶겨 죽임).
- 훈요 10조 — 불교 숭상, 서경 중시, 거란 경계 등 후대 왕에게 남긴 유훈.
시험 포인트
- 통일 순서: 공산(패) → 고창(승) → 경순왕 항복 → 일리천. 신라 항복이 후백제 멸망보다 먼저!
- 사심관(경순왕이 첫 사례)·기인 제도 = 호족 견제 / 혼인·사성 = 호족 회유 — 양면 정책.
- 발해 유민 포용 = "민족의 재통일" — 신라 통일과의 차별점 서술형.
2 통치 체제의 정비 — 광종·성종과 중앙·지방 제도
혼인 정책의 후유증(외척·호족의 발호)을 광종이 피의 숙청으로 정리하고, 성종이 유교 정치의 틀을 세우며 고려는 안정기에 들어섭니다.
사진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Kwkhh, CC BY-SA 4.0
- 광종의 왕권 강화 3종 — 노비안검법(956, 불법 노비 해방 → 호족의 경제·군사 기반 약화 + 국가 재정 확충), 과거제(958, 쌍기 건의 — 능력 본위, 신진 관료로 왕권 뒷받침), 칭제건원(황제 칭호, 연호 광덕·준풍) + 공복 제정. 반발 호족은 가차 없이 숙청.
- 성종의 유교 정치 — 최승로의 시무 28조("불교는 수신의 근본, 유교는 치국의 근본") 수용: 12목에 지방관 첫 파견, 향리 제도 정비, 국자감 정비, 의창(흑창 확대)·상평창(물가 조절), 연등회·팔관회 축소.
- 중앙 조직 — 2성 6부(당 수용): 중서문하성(재신·낭사, 수장 문하시중)–상서성(6부 집행). 중추원(송 수용 — 군사 기밀·왕명 출납), 어사대(감찰), 삼사(회계 담당 — 조선의 3사와 전혀 다름!). 독자 기구: 도병마사(국방)·식목도감(법제) — 재신+추밀의 합의제(귀족 정치의 상징). 대간(어사대+낭사): 간쟁·봉박·서경권으로 왕권 견제.
- 지방·관리 등용 — 5도(안찰사)·양계(병마사, 국경)·3경. 주현보다 속현이 더 많음 → 실무는 향리가(조선과의 결정적 차이). 특수 구역 향·부곡·소. 과거(문과·잡과·승과 — 무과 없음) + 음서(5품 이상 자손 무시험 등용 — 문벌 세습의 통로).
시험 포인트
- 고려 삼사 = 회계 / 조선 3사 = 언론 — 최고의 함정 문제.
- 도병마사·식목도감 = 고려 독자 기구(재추 합의제). 대간의 서경권도 빈출.
- 속현 다수·향리 실무(고려) ↔ 모든 군현 수령 파견(조선) 대비.
- 음서 = 문벌 귀족 특권 / 무과 없음 — 고려 과거제의 특징.
3 문벌 사회의 성립과 동요 — 이자겸의 난과 묘청
성종 이후 과거와 음서로 관직을 세습한 문벌(경원 이씨·해주 최씨 등)이 왕실과 혼인하며 권력을 독점합니다. 12세기 그 모순이 두 사건으로 폭발합니다.
- 문벌의 특권 — 음서(관직 세습) + 공음전(5품 이상, 세습 가능한 토지) + 왕실과의 중첩 혼인. 대표: 경원(인주) 이씨 — 이자겸은 예종·인종 두 왕의 장인.
- 이자겸의 난(1126) — "십팔자(十八子=李)가 왕이 된다"는 참설 속에 왕위 찬탈 시도 → 척준경의 배신으로 실패. 문벌 사회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 신호.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 서경파(묘청·정지상: 풍수지리, 칭제건원·금국 정벌, 자주) vs 개경파(김부식: 유교 사대, 현상 유지). 인종이 천도를 포기하자 서경에서 거병(국호 '대위', 연호 '천개') → 김부식의 관군에 1년 만에 진압.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자주 vs 사대의 분수령)이라 평가.
- 직후 김부식이 「삼국사기」(1145) 편찬 — 현존 최고(最古) 역사서, 기전체, 유교적 합리주의(신라 계승 의식).
시험 포인트
- 서경파(묘청·풍수지리·칭제건원·금국 정벌) vs 개경파(김부식·사대) 대립 구도표.
- 신채호의 평가("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인용 사료 빈출.
- 이자겸의 난(1126)과 묘청(1135) = 문벌 사회 동요 → 무신정변(1170)의 전조.
4 거란·여진과의 항쟁 — 서희에서 윤관까지
고려는 송·거란(요)·여진(금)이 각축하는 다원적 국제 질서에서 실리 외교와 항전을 병행했습니다. 거란 3차례 침입의 "침입 이유-대응-결과" 세트가 핵심입니다.
| 침입 | 시기 | 대응 | 결과 |
|---|---|---|---|
| 거란 1차 | 993 (성종) | 서희의 외교 담판 (소손녕) | 송과 단교 약속 대가로 강동 6주 획득 — 압록강까지 확장 |
| 거란 2차 | 1010 (현종) | 양규의 항전, 현종 나주 피난 | 개경 함락됐으나 격퇴 · 초조대장경 조판 시작 |
| 거란 3차 | 1018 | 강감찬 귀주대첩(1019) | 거란 대파 → 개경 나성·천리장성(압록강~도련포) 축조, 고려-송-거란 세력 균형 |
| 여진 | 1107 (예종) | 윤관의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 | 동북 9성 축조 → 방어 곤란으로 반환. 여진이 금 건국(1115) 후 사대 요구 → 이자겸이 수용(1126) |
- 서희 담판의 논리 — ①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국호가 증거) — 오히려 거란의 동경이 우리 땅" ② "여진이 길을 막아 거란과 교류하지 못할 뿐" → 싸우지 않고 강동 6주 획득. 협상으로 영토를 넓힌 외교사의 고전.
- 별무반 — 여진 기병에 패한 뒤 윤관 건의로 편성: 신기군(기병)·신보군(보병)·항마군(승병). 목적 조직이라는 점에서 삼별초(최씨 사병)와 구분.
- 금 사대 수용(1126) — 권력 유지를 원한 이자겸·김부식 등이 수용 → 북진 정책 사실상 좌절 → 묘청의 금국 정벌론이 나온 배경.
시험 포인트
- 거란 1~3차: 서희(993 강동 6주) → 양규 → 강감찬(1019 귀주). 살수대첩(고구려)과 혼동 금지.
- 천리장성: 고려(압록강~도련포, 거란·여진 대비) ↔ 고구려 천리장성(당 대비) 구분.
- 별무반 = 윤관 = 여진 = 동북 9성. 금 사대 수용 → 묘청 배경으로 연결.
5 무신 정권 — 정변과 하층민의 봉기
문신 우대·무신 차별(군인전 미지급, 김부식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화)이 쌓여 무신정변(1170)이 터집니다. 이후 100년의 무신 집권기는 권력 투쟁과 민중 봉기의 시대였습니다.
- 정변과 초기 혼란 — 보현원에서 정중부·이의방 거병("문신의 관을 쓴 자는 씨를 남기지 말라"), 의종 폐위. 중방(무신 회의) 중심 → 경대승(도방 설치)·이의민(천민 출신!) 등 실력자가 명멸.
- 최씨 정권(1196~1258, 4대 60년) — 최충헌: 교정도감(최고 권력 기구), 봉사 10조(개혁안 — 실천은 안 함), 도방 확대. 최우: 정방(인사권 장악), 서방(문인 등용), 삼별초(좌·우별초+신의군 — 사병이자 공적 군대).
- 하층민 봉기 — 신분 질서 동요("천민 이의민도 집권하는데") + 수탈 가중: 망이·망소이의 난(1176, 공주 명학소 — 특수 행정구역 차별), 김사미·효심의 난(1193, 경상도), 만적의 난(1198, 최충헌의 사노비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신분 해방 지향), 전주 관노의 난. 삼국 부흥 표방 봉기(경주 신라 부흥, 서경 고구려 부흥, 담양 백제 부흥)도 발생.
시험 포인트
- 권력 기구 변천: 중방 → 교정도감(최충헌) → +정방·서방(최우). 기구-인물 매칭.
- 망이·망소이 = 명학소(소 차별) / 만적 = 신분 해방 — 봉기 성격 구분.
- 삼별초 = 최우의 사병 기구 → 대몽 항쟁으로 연결(다음 절).
6 몽골과의 전쟁과 원 간섭기
13세기 세계 최강 몽골의 침입(1231~) 앞에서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하며 약 30년을 항전했고, 이후 100년 가까운 원 간섭기를 겪습니다. "항쟁의 증거"와 "간섭의 양상"을 나눠 정리하세요.
사진 — 팔만대장경: Steve46814, CC BY-SA 3.0
- 대몽 항쟁 — 1차: 박서의 귀주성 항전(1231) → 최우의 강화 천도(1232) → 처인성 전투(1232, 승려 김윤후가 부곡민과 함께 사령관 살리타 사살) → 충주성 전투(1253, 김윤후 —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공을 주겠다"며 노비 문서 소각, 관노·백성의 항전). 민중이 항쟁의 주역이었다는 점이 핵심.
- 문화재의 수난과 대장경 — 초조대장경(대구 부인사)·황룡사 9층 목탑 소실 →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16년 조판 — 8만여 장, 오탈자 거의 없음.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보관(대장경판·판전 모두 유네스코 등재).
- 개경 환도(1270)와 삼별초 — 최씨 정권 붕괴 후 강화 체결·환도 → 삼별초가 항전 지속: 강화도(배중손, 승화후 온 옹립) → 진도 용장성 → 제주 항파두리(김통정) → 진압(1273). 자주 의식의 상징으로 평가.
- 원 간섭의 양상 — 영토 상실: 쌍성총관부(철령 이북)·동녕부(서경)·탐라총관부(제주). 정동행성(일본 원정 기구 → 원정 실패 후에도 내정 간섭 기구로 존속), 다루가치(감찰관). 왕실 격하: 폐하→전하, '조·종' 묘호 대신 '충O왕', 원 공주와 혼인(부마국). 수탈: 공녀(결혼도감)·응방(매). 풍속: 몽골풍(변발·호복·소주·족두리) ↔ 고려양(원에 퍼진 고려 풍속).
- 권문세족 — 친원 세력(역관·응방 출신 등)이 새 지배층으로: 음서로 세습, 도평의사사 장악, 대농장(산천을 경계로)과 양민의 노비화 — 공민왕 개혁과 신진사대부 성장의 배경.
시험 포인트
- 처인성(살리타 사살)·충주성 = 김윤후 + 하층민 항쟁. 삼별초 이동로: 강화→진도→제주.
- 초조대장경(거란 침입 때 조판, 몽골 때 소실) vs 팔만대장경(몽골 때 조판) — 반복 함정.
- 원 간섭 키워드: 정동행성·쌍성총관부·충O왕·공녀·몽골풍. 권문세족 = 친원+대농장.
7 공민왕의 개혁과 고려의 멸망
14세기 중반 원·명 교체기의 틈을 타 공민왕이 반원 자주 개혁에 나섭니다. 개혁은 좌절되지만 이 과정에서 성장한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이 새 왕조의 주역이 됩니다.
- 반원 자주 정책 — 기철 등 친원파(기황후 일족)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무력 수복(1356, 유인우 — 이 지역 세력가 이자춘·이성계 부자가 내응), 관제 복구(2성 6부), 몽골풍 금지.
- 내정 개혁 — 신돈 등용, 전민변정도감(1366):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 반환·강제 노비 해방 → 권문세족의 격렬한 반발 → 신돈 제거, 공민왕 시해(1374)로 좌절. 성균관을 순수 유학 기관으로 개편(이색) — 신진 사대부의 산실.
- 신진 사대부 vs 권문세족 — 사대부: 지방 향리·중소 지주 출신, 성리학(안향이 소개 → 이제현 만권당 → 이색·정몽주·정도전), 과거로 진출, 친명. 권문세족: 친원, 음서, 대농장. 대립 구도가 왕조 교체의 동력.
- 신흥 무인의 성장 — 홍건적(개경 함락, 공민왕 안동 피난)과 왜구 격퇴 과정에서: 최영(홍산 대첩), 이성계(황산 대첩 1380), 최무선의 화통도감(1377)·진포 대첩(1380, 화포로 왜선 500척 격침), 박위(쓰시마 정벌).
- 멸망 — 명의 철령위 요구 → 최영의 요동 정벌론 → 이성계의 4불가론·위화도 회군(1388, 최영 제거·우왕 폐위) → 과전법(1391, 신진 사대부 경제 기반) → 온건파(정몽주 — 선죽교) 제거 → 조선 건국(1392).
시험 포인트
- 공민왕 = 원·명 교체기 + 쌍성총관부 수복 + 전민변정도감(신돈). 3종 세트.
- 멸망 순서: 위화도 회군(1388) → 과전법(1391) → 건국(1392) — 과전법이 건국보다 먼저!
- 신진 사대부(성리학·과거·친명) vs 권문세족(친원·음서·대농장) 비교표.
- 최무선 = 화통도감 + 진포 대첩(최초의 화포 해전).
8 고려의 경제·사회와 문화
고려는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였습니다. 벽란도에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며 'KOREA'라는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고, 여성의 지위도 조선 후기보다 높았습니다.
- 경제 — 전시과 체제(관직 복무 대가로 토지의 수조권 지급: 시정→개정→경정 전시과), 국제 무역항 벽란도(예성강 하구 — 송·아라비아 상인), 화폐: 건원중보(성종)·해동통보·활구(은병, 숙종) — 주조했으나 유통 부진.
- 사회 — 여성 지위: 균분 상속, 아들·딸 구분 없는 제사·호적 기재, 여성 호주 가능, 사위의 처가살이, 재가 자유(자식 차별 없음) — 조선 후기와 대비하는 문제 빈출. 향도(불교 신앙 공동체 → 농민 공동체로).
- 불교 통합 운동 — 의천(교종 중심 통합: 천태종, 교관겸수, 속장경 간행) vs 지눌(선종 중심 통합: 조계종, 수선사 결사, 정혜쌍수·돈오점수). +혜심(유불 일치설 — 성리학 수용의 토대), 요세(백련 결사). 연등회·팔관회.
- 인쇄 혁명 — 상정고금예문(1234, 기록상 최초 금속활자) / 직지심체요절(1377, 청주 흥덕사) — 현존 세계 最古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섬, 유네스코 기록유산(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 예술 — 고려청자: 순청자 → 상감청자(12세기 중엽~, 표면을 파내고 다른 흙을 메우는 독창 기법). 나전칠기·은입사. 불화(수월관음도), 주심포 건축(부석사 무량수전 — 배흘림기둥, 현존 최고 목조 건축의 하나).
- 역사서와 성리학 — 삼국사기(김부식, 1145, 기전체·유교적) vs 삼국유사(일연, 충렬왕 대, 단군신화 수록·자주적) + 동명왕편(이규보, 고구려 계승)·제왕운기(이승휴, 단군 시작) — 원 간섭기의 자주 사관. 안향의 성리학 소개, 문익점의 목화(1363).
시험 포인트
- 의천(천태종·교관겸수) vs 지눌(조계종·정혜쌍수·수선사) — 최다 빈출.
- 삼국사기(김부식·기전체) vs 삼국유사(일연·단군 수록) + 동명왕편·제왕운기(자주 사관).
- 직지 3키워드: 현존 最古 금속활자본·청주 흥덕사·프랑스 소장.
- 고려 여성 지위(균분 상속·재가 자유) ↔ 조선 후기(장자 상속·재가 금지)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