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치 체제의 변화 — 비변사, 예송과 환국
양 난은 조선의 권력 구조를 바꿔 놓았습니다. 임시 기구였던 비변사가 최고 권력 기구가 되고, 붕당 정치는 예송과 환국을 거치며 극한 대립으로 변질됩니다.
- 비변사의 비대화 — 삼포왜란(중종, 임시 설치) → 을묘왜변(명종, 상설화) → 임진왜란 후 국정 전반 장악: 의정부·6조 유명무실화, 왕권 제약. 세도 정치기 외척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이 혁파 — "비변사의 일생"이 통째로 출제됩니다.
- 군사 개편 — 중앙 5군영: 훈련도감(왜란 중, 삼수병 — 급료병 = 직업 군인!) + 어영청·총융청·수어청(인조) + 금위영(숙종). 지방 속오군(양반~노비 총동원 편제 — 평시 생업, 유사시 동원).
- 예송(현종) — 효종(차남으로 즉위) 사후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 논쟁: 1차 기해예송(서인 1년 승) / 2차 갑인예송(남인 승). 본질 = 왕실도 사대부 예법을 따르나?(서인, 신권) vs 왕실 예는 특별하다(남인, 왕권) — 단순 상복 싸움이 아닌 이념 대립.
- 환국(숙종) — 왕이 집권 붕당을 통째로 갈아치움: 경신환국(1680, 남인 축출 → 서인이 노론·소론 분화) → 기사환국(1689, 장희빈 아들 원자 책봉 — 남인 집권, 송시열 사사) → 갑술환국(1694, 서인 재집권). 결과: 상호 공존 붕괴, 일당 전제화·보복 정치 — 탕평론이 나오는 배경.
시험 포인트
- 비변사: 왜란 후 최고 기구화 → 세도 정치 기반 → 대원군 혁파. 흐름 전체가 한 문제.
- 훈련도감 = 삼수병 + 급료병(직업 군인) — 양인개병제의 붕괴 신호.
- 예송 = 현종 = 상복 = 서인 vs 남인 / 환국 = 숙종 = 일당 전제화. 왕 매칭 주의.
2 수취 체제의 개편 — 영정법·대동법·균역법
전쟁으로 무너진 재정과 민생을 살리기 위해 세금 제도가 크게 바뀝니다. 특히 대동법은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를 여는 열쇠였습니다.
| 제도 | 내용 | 영향 |
|---|---|---|
| 영정법 (인조, 1635) | 전세를 풍흉 관계없이 1결당 4두로 고정 | 전세율 인하 — 그러나 각종 부가세로 농민 부담은 여전 |
| 대동법 (광해군 1608 ~ 숙종 1708) | 공납(가호별 특산물)을 토지 기준 쌀(1결 12두)·베·돈으로 통일 | 방납 폐단 제거, 땅 없는 농민 부담 감소, 공인 등장 → 상품 화폐 경제 발달. 지주 반발로 전국 확대에 100년(이원익 건의 → 김육 확대 노력) |
| 균역법 (영조, 1750) | 군포 2필 → 1필 감면 | 부족분: 결작(토지 1결 2두) + 선무군관포(부유층) + 어염선세 — 토지로 부담 이동 |
- 대동법의 나비 효과 —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 → 수공업·상업 자극 → 상품 화폐 경제의 기폭제. "가호 기준 → 토지 기준"으로의 전환은 조세 정의의 진전.
- 한계 — 진상·별공은 존속, 지방 관아의 수탈 여전. 균역법의 결작도 소작농에게 전가되는 경우 많음 — "개혁의 취지와 현실의 간극"이 서술 포인트.
시험 포인트
- 대동법 인과 사슬: 공납의 방납 폐단 → 토지 기준 쌀 → 공인 → 상품 화폐 경제. 서술형 단골.
- 균역법 보충 3종: 결작·선무군관포·어염선세.
- 대동법 100년(광해군 경기 → 숙종 전국) — 지연 이유 = 양반 지주의 반발.
3 경제의 변화 — 모내기와 상품 화폐 경제
17~18세기 농업 기술과 시장의 발달이 조선 사회의 밑바닥을 바꿉니다. "이앙법 → 광작 → 농민층 분화"와 "사상의 성장 → 도고"라는 두 사슬이 핵심입니다.
| 사상(私商) | 근거지 | 활동 |
|---|---|---|
| 송상 | 개성 | 전국 지점 '송방', 인삼 재배·판매, 청-일 중계 무역 |
| 경강상인 | 한강 | 미곡·어물 운송(선상), 서울 물가 좌우 |
| 만상 | 의주 | 대청 무역 (책문 후시) |
| 내상 | 동래 | 대일 무역 (왜관 개시) |
- 농업 — 이앙법(모내기) 전국 확산: 김매기 노동력 절감 + 벼·보리 이모작 → 1인 경작지 확대(광작) → 일부는 부농(경영형 부농), 다수는 땅을 잃고 임노동자로 — 농민층 분화. 상품 작물 재배(담배·인삼·목화·채소 — "밭에서 돈이 나온다"), 구황 작물(고구마 18c 일본, 감자 19c 청). 지대 변화: 타조법(1/2 정률) → 일부 도조법(정액 — 농민에게 유리).
- 상업 — 장시 1,000여 개(5일장 네트워크, 보부상), 포구 상업(객주·여각 — 숙박·금융·위탁 판매), 공인+사상의 성장 → 도고(독점 도매상 — 매점매석 폐단도). 대외: 개시(공무역)·후시(사무역).
- 화폐·광업·수공업 — 상평통보 전국 유통(숙종) — 세금·지대의 화폐 납부. 부작용 전황(지주·상인의 화폐 축장으로 유통 부족 — 이익의 폐전론). 광산: 설점수세제 → 잠채 성행, 덕대(전문 경영인)-물주(자본)-광군(노동)의 분업. 수공업: 선대제(상인 자본이 지배) → 18세기 말 독립 수공업 등장.
시험 포인트
- 이앙법 → 이모작·광작 → 농민층 분화 — 조선 후기 사회 변동의 출발점.
- 사상 매칭: 송상(개성·송방·인삼)/경강(한강·운송)/만상(의주·청)/내상(동래·일).
- 덕대 = 광산 전문 경영인 / 전황 = 화폐 부족 현상 — 용어 정의 문제.
4 영·정조의 탕평 정치
환국의 폐해를 목격한 영조·정조는 붕당을 억누르고 왕이 정국을 주도하는 탕평 정치를 폅니다. 두 왕의 업적 구분이 이 단원 최다 빈출입니다.
사진 — 수원 화성 팔달문: Kbarends, CC BY-SA 3.0
| 구분 | 영조 (완론 탕평) | 정조 (준론 탕평) |
|---|---|---|
| 정치 | 탕평비 건립(성균관), 탕평파 육성, 산림 부정, 서원 대폭 정리, 이인좌의 난 진압(1728) | 규장각(개혁 두뇌, 초계문신제로 재교육), 장용영(친위 부대), 수령의 향약 주관(사림 견제) |
| 민생·경제 | 균역법(1750), 신문고 부활, 청계천 준설 | 신해통공(1791, 육의전 제외 금난전권 폐지 — 사상의 자유 상업) |
| 편찬·문화 | 속대전, 동국문헌비고 |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수원 화성(1796, 정약용 거중기) |
| 인재 | — | 서얼 등용 — 규장각 검서관(박제가·이덕무·유득공) |
- 탕평의 본질 — 붕당 자체를 없앤 게 아니라 왕권으로 억누른 것. 영조의 비극 임오화변(1762, 사도세자를 뒤주에) 이후 시파·벽파의 잠재 대립.
- 수원 화성 — 정조의 개혁 신도시(아버지 사도세자 묘 이장 + 친위 기반). 정약용의 거중기(도르래)·녹로로 공기 단축, 「화성성역의궤」에 전 과정 기록(유네스코 세계유산·기록유산).
- 한계 — 왕 개인의 역량에 의존한 안정 → 정조 급서(1800) 후 어린 순조 즉위와 함께 세도 정치로 급전락.
시험 포인트
- 영조(탕평비·균역법·속대전) vs 정조(규장각·장용영·화성·신해통공·검서관) — 최다 빈출.
- 신해통공 = 금난전권 폐지(육의전 제외) = 사상의 성장 — 경제 파트와 연결.
- 초계문신제·규장각 검서관(서얼) = 정조의 인재 정책.
5 실학과 국학, 과학의 발달
성리학이 현실 문제를 풀지 못하자 실증·실용의 학문 실학이 일어납니다. 농업 중심 개혁(중농)과 상공업 중심 개혁(중상·북학), 그리고 우리 것을 연구하는 국학으로 나뉩니다.
| 학파 | 인물과 주장 |
|---|---|
| 중농학파 (경세치용) | 유형원(균전론, 반계수록) · 이익(한전론 — 영업전 매매 금지, 나라를 좀먹는 6좀) · 정약용(여전론→정전제,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거중기·배다리 — 신유박해로 강진 유배 18년, 500여 권 저술) |
| 중상학파 (이용후생·북학파) | 유수원(우서 — 사농공상 직업 평등) · 홍대용(의산문답 — 지전설·무한 우주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 박지원(열하일기 — 수레·선박·화폐 사용 주장) · 박제가(북학의 — 소비론 "우물물은 퍼내야 차오른다", 청 문물 적극 수용) |
| 국학 | 안정복(동사강목 — 우리 역사 정통론) · 유득공(발해고 — "남북국" 용어 최초) · 이긍익(연려실기술) · 이중환(택리지) · 정상기(동국지도, 최초 100리척) · 김정호(대동여지도 — 10리 눈금, 목판 인쇄) · 신경준·유희(우리말 연구) |
- 과학과 고증 — 김석문·홍대용의 지전설(성리학적 중화 세계관에 타격), 시헌력 도입(김육), 정약전 「자산어보」(흑산도 유배 중 어류 155종 기록), 이제마 「동의수세보원」(사상 의학), 정약용 「마과회통」(종두법 소개). 김정희: 「금석과안록」 —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Ⅰ단원과 연결!), 추사체.
- 서학과 동학 — 천주교: 17c 학문으로 수용(이수광 지봉유설) → 18c 후반 남인이 신앙화(이승훈 최초 세례) → 제사 거부 문제로 박해: 신해박해(1791 진산 사건) → 신유박해(1801, 이승훈·정약종 처형, 정약용 형제 유배, 황사영 백서 사건). 평등 사상에 여성·중인·평민 호응. 동학(1860, 경주 최제우) — 시천주·인내천("사람이 곧 하늘"), 후천개벽, 경전 「동경대전」·「용담유사」 → 혹세무민 죄로 최제우 처형(1864), 최시형이 교단 재건(포접제) → Ⅵ단원 동학농민운동으로.
시험 포인트
- 중농(토지 개혁: 균전-한전-여전) vs 중상(청 문물·상공업) 학파-인물-저서 매칭.
- 정약용 3종 저서(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전론 + 거중기.
- 유득공 발해고("남북국") — Ⅱ단원과 연결. 김정희 금석과안록 — Ⅰ단원 순수비와 연결.
- 동학 = 인내천 + 동경대전·용담유사 + 최제우 → 최시형.
6 서민 문화의 발달과 신분제의 동요
경제력을 갖춘 서민이 문화의 소비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동시에 양반 중심 신분 질서가 아래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 문학 — 한글 소설: 홍길동전(허균 — 서얼 차별 비판, 최초 한글 소설)·춘향전(신분을 넘은 사랑)·심청전·흥부전. 사설시조(형식 파괴, 서민의 솔직한 감정). 한문학의 풍자: 박지원의 양반전·허생전·호질(양반의 위선), 정약용의 애절양(삼정 문란 고발). 중인·서얼의 시사(詩社) 결성.
- 공연 예술 — 판소리(춘향가·심청가 등 다섯 마당, 19c 신재효 정리 — 유네스코 무형유산), 탈놀이(봉산탈춤·하회별신굿·산대놀이 — 말뚝이가 양반 조롱: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소반 '반'자 쓰는 양반").
- 그림·자기 — 풍속화: 김홍도(씨름·서당 — 서민의 일상) vs 신윤복(미인도·단오풍정 — 양반·여성 풍속). 진경산수화: 정선(인왕제색도·금강전도 — 중국 상상 산수가 아닌 우리 산천 직접 사생). 민화(까치와 호랑이·문자도 — 서민의 소망·해학), 서예(김정희 추사체), 청화백자(순백자에 푸른 그림)·옹기.
- 신분제 동요 — 양반 폭증: 공명첩(이름 비운 임명장)·납속책(곡식 내면 신분 상승)·족보 위조 → "온 고을이 양반"(정약용). 중인의 소청 운동(철종 대 — 실패했으나 신분 의식 성장), 서얼의 통청 운동(정조의 검서관 등용으로 일부 결실). 노비: 노비종모법(영조 — 어머니 따라), 공노비 해방(순조 1801) → 노비제 폐지(갑오개혁 1894). 가족 질서: 부계 강화 — 장자 상속·장자 제사, 재가 금지, 동성 마을 — 고려·조선 전기와 정반대(균분 상속 소멸).
시험 포인트
- 김홍도(서민 일상) vs 신윤복(양반·여성) 그림 매칭 — 이미지 단골. 진경산수 = 정선 = 우리 산천.
- 공명첩·납속 = 신분제 동요의 수단. 공노비 해방 = 순조 1801.
- 여성 지위 비교: 고려~조선 전기(균분 상속·재가 자유) ↔ 조선 후기(장자 중심·재가 금지) — 시대 통합형 문제.
7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정조 사후 3대 60여 년,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 왕실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합니다(세도 정치). 그 수탈이 삼정의 문란으로 나타나고, 결국 전국적 농민 봉기로 폭발합니다.
| 삼정 | 문란의 실태 |
|---|---|
| 전정 (토지세) | 진결(황무지 과세)·은결(대장 누락 후 착복)·각종 부가세 |
| 군정 (군포) | 백골징포(죽은 자에게)·황구첨정(어린아이에게)·족징·인징(이웃·친척에게 대신) |
| 환곡 (구휼 대출) | 강제 대출, 겨 섞기(분석), 장부 조작 — 가장 극심한 폐단. 구휼 제도가 고리대로 변질 |
- 세도 정치의 구조 — 어린 왕(순조 11세·헌종 8세·철종 강화도령) + 외척의 비변사 장악 + 매관매직(수령직을 사면 백성에게 뽑아냄) — 과거제 문란, 삼정 문란의 근원.
- 홍경래의 난(1811) — 평안도(서북) 차별 + 세도 수탈. 몰락 양반 홍경래 + 상인(우군칙) + 광산 노동자·농민 연합 — 청천강 이북 8읍 장악, 정주성에서 5개월 항전 후 진압. 이후에도 "홍경래는 살아 있다"는 소문이 민심을 흔듦.
- 임술 농민 봉기(1862, 철종) — 진주에서 시작(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학, 몰락 양반 유계춘 주도) → 전국 70여 곳 확산. 정부 대응: 안핵사 박규수 파견, 삼정이정청 설치 — 성과 없이 폐지(미봉). 농민의 사회 의식 성장 → Ⅵ단원 동학농민운동의 토양.
- 불안한 민심과 새 사상 — 「정감록」(왕조 교체 예언)·미륵 신앙 유행, 천주교 확산과 박해, 동학 창시(1860) — 기존 질서가 답을 주지 못할 때 민중이 찾은 출구들.
시험 포인트
- 삼정 문란 용어 매칭: 백골징포·황구첨정(군정) / 환곡 = 최악의 폐단.
- 홍경래(1811·평안도 차별·정주성) vs 임술 봉기(1862·진주 시작·삼정이정청) — 구분 문제.
- 세도 정치 = 외척 + 비변사 + 삼정 문란. 안핵사 박규수(임술)는 훗날 개화파의 스승 — Ⅵ단원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