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의 건국 — 역성혁명과 한양 천도
위화도 회군(1388)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는 과전법(1391)으로 경제 기반을 마련한 뒤 조선을 세웠습니다(1392). 국호 '조선'은 고조선 계승 선언이고, 한양은 유교 이념으로 설계된 계획 도시입니다.
사진 — 경복궁 근정전: kallerna, CC BY-SA 4.0
- 건국 과정 — 위화도 회군(4불가론) → 온건파 사대부(정몽주 — "이 몸이 죽고 죽어…" 단심가, 선죽교에서 피살) 제거 → 이성계 즉위(1392) → 한양 천도(1394).
- 한양의 유교 설계 —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왼쪽 종묘, 오른쪽 사직단), 4대문에 유교 덕목: 흥인지문(仁)·돈의문(義)·숭례문(禮)·숙정문(智 계열) + 중앙 보신각(信).
- 정도전의 설계도 — 「조선경국전」·「경제문감」(통치 규범), 「불씨잡변」(불교 비판 — 성리학 국가 선언), 재상 중심 정치론("임금은 한 사람, 재상은 인재 중의 인재"). → 왕권 중심을 원한 이방원과 충돌, 1차 왕자의 난(1398)으로 제거 — 조선 정치사의 영원한 긴장(왕권 vs 신권)의 서막.
- 태종(이방원)의 왕권 확립 — 6조 직계제(의정부 패싱), 사병 혁파, 호패법(16세 이상 남자 — 인구·군역 파악), 신문고, 사간원 독립, 양전 사업.
시험 포인트
- 건국 순서: 위화도 회군 → 과전법 → 건국 → 한양 천도.
- 정도전 = 재상 중심 + 조선경국전 + 불씨잡변 ↔ 태종 = 6조 직계 + 호패법 + 사병 혁파.
- 한양 4대문의 인의예지 — 유교 이념 도시의 증거.
2 통치 체제의 정비 — 경국대전 체제
태종이 다진 왕권 위에 세종·성종이 제도를 완성합니다. 조선 통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 — 왕권 기구와 신권 기구가 서로를 견제하는 구조입니다.
| 구분 | 기구 | 역할 |
|---|---|---|
| 합의·행정 | 의정부 – 6조 | 3정승 합의(의정부) → 6조 집행. 6조 직계제(태종·세조) vs 의정부 서사제(세종) — 왕권·신권의 시소 |
| 언론 (신권) | 3사: 사헌부·사간원·홍문관 | 감찰·간쟁·자문 — 권력 견제. "언론을 막는 임금은 폭군"이라는 견제 장치 |
| 왕권 직속 | 승정원(왕명 출납) · 의금부(국왕 직속 사법) | 왕권 뒷받침 기구 — 3사와 대비해 출제 |
| 기타 | 한성부(수도 행정) · 춘추관(역사 기록) · 성균관(최고 교육) | 실록 편찬(사초·시정기 → 사고 보관) |
- 지방 행정 — 8도(관찰사) 아래 부·목·군·현: 모든 군현에 수령 파견(속현 소멸 — 고려와의 결정적 차이). 수령은 행정·사법·군사 장악(수령 7사), 향리는 세습 아전으로 격하(고려 향리보다 지위 하락). 유향소(좌수·별감 — 향촌 자치·수령 보좌)와 경재소(중앙의 유향소 통제).
- 군역과 교육·과거 — 양인개병·농병일치(정군+보인), 중앙 5위·지방 영진군. 교육: 서당 → 4부 학당(서울)·향교(지방) → 성균관. 과거: 문과(소과 생원·진사 → 대과), 무과(고려와 달리 실시!), 잡과. 천거(조광조의 현량과).
- 세조와 성종 — 세조: 계유정난(1453)으로 집권(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 → 처형), 6조 직계 부활, 집현전·경연 폐지, 직전법(현직 관리만 수조권), 경국대전 편찬 시작. 성종: 홍문관 설치·경연 부활, 경국대전 완성·반포(1485) — "법에 의한 유교 통치" 완성.
시험 포인트
- 3사(언론·신권) vs 승정원·의금부(왕권) — 기구 성격 구분이 최다 빈출.
- 모든 군현 수령 파견 + 향리 격하 = 조선 중앙집권의 완성(고려 대비).
- 경국대전: 세조 시작 → 성종 완성. 6조 직계(태종·세조) vs 의정부 서사(세종).
3 세종대왕 — 민족 문화의 절정
세종(재위 1418~1450)은 집현전에서 인재를 기르고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훈민정음·칠정산·농사직설 — 모두 "중국 것이 우리와 맞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자주적 성취입니다.
사진 — 앙부일구: Nina R, CC BY 2.0 · 측우기: Steve46814, CC BY-SA 3.0
- 훈민정음 — 창제 1443, 반포 1446. 자음은 발음 기관, 모음은 천·지·인을 본뜬 과학적 문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 민본 정신.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기록유산. 용비어천가(최초의 한글 문헌)·삼강행실도(윤리 보급).
- 과학 기술(장영실·이천 등) — 측우기(1441, 세계 최초 강우량 측정기), 자격루(자동 물시계), 앙부일구(해시계), 혼천의·간의(천문). 역법 칠정산 내·외편 — 최초로 한양 기준의 독자 역법(원의 수시력+아라비아 회회력 연구). 금속활자 갑인자.
- 영토와 외교 — 4군(최윤덕)·6진(김종서) 개척 → 압록강~두만강 국경 확정(사민 정책으로 남방 백성 이주). 쓰시마 정벌(이종무, 1419) 후 3포 개항(부산포·제포·염포)·계해약조 — 강온 양면의 대일 정책.
- 편찬과 제도 — 농사직설(우리 풍토의 농법 — 농민 경험 수집), 향약집성방(우리 약재)·의방유취(의학 백과), 공법(전분 6등·연분 9등 — 여론 조사 17만 명 실시 후 시행!).
시험 포인트
- 칠정산 = "한양 기준 독자 역법" — 자주성 키워드. 농사직설·향약집성방도 같은 맥락.
- 4군 6진(최윤덕·김종서) = 오늘날 국경. 쓰시마 정벌(이종무)과 세트.
- 측우기·자격루·앙부일구 실물 사진 매칭. 공법의 여론 조사 일화도 출제.
4 사림의 성장과 사화
성종이 훈구(세조 공신 계열) 견제를 위해 등용한 사림(김종직 등 영남 성리학자, 정몽주-길재 학통)은 네 차례 사화로 화를 입으면서도 서원과 향약으로 향촌에서 힘을 길러, 선조 대 마침내 정권을 장악합니다.
| 사화 | 왕 | 계기 |
|---|---|---|
| 무오사화 (1498) | 연산군 | 김종직의 조의제문(세조 비판 우의)을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 |
| 갑자사화 (1504) | 연산군 | 생모 폐비 윤씨 사건 관련자 숙청 |
| 기묘사화 (1519) | 중종 | 조광조의 급진 개혁(현량과·위훈 삭제·소격서 폐지)에 훈구 반발 — "주초위왕(走肖爲王)" |
| 을사사화 (1545) | 명종 | 외척 대윤(윤임) vs 소윤(윤원형)의 권력 다툼 |
- 조광조의 개혁 — 현량과(천거로 사림 등용), 소격서 폐지(도교 행사 폐지), 위훈 삭제(중종반정 공신 3/4 삭제 — 훈구의 역린), 향약 보급, 소학 장려. 급진성에 중종도 부담 → 기묘사화로 사사("애군여애부…" 절명시).
- 사림의 재기 기반 — 서원: 백운동 서원(주세붕, 1543 — 최초) → 이황 건의로 소수서원 사액(면세·면역 특권). 제사(선현) + 교육 기능, 사림의 여론 거점. 향약: 향촌 자치 규약(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 — 사림이 향촌 백성을 성리학 질서로 조직.
- 명종 대 외척 정치의 폐단 — 윤원형·문정왕후, 임꺽정의 난(1559, 황해도) — 수탈에 저항한 의적.
시험 포인트
- 4대 사화 순서(무오→갑자→기묘→을사)와 계기 매칭. 기묘 = 조광조 = 주초위왕.
- 서원(백운동→소수서원 사액)과 향약 = 사림의 향촌 기반 — "사화에도 사림이 살아남은 이유".
- 조의제문(무오)·위훈 삭제(기묘) — 사료 제시형 대비.
5 붕당의 출현과 성리학적 질서
선조 대 정권을 잡은 사림은 곧 동인과 서인으로 나뉩니다(1575). 붕당은 "학연 + 정치 노선"의 결합체로, 초기에는 상호 비판과 공존의 원리가 작동했습니다.
사진 — 소수서원: Kyle, CC BY 2.0
- 분당의 계기 — 인사권을 쥔 이조 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신진)과 심의겸(기성 — 명종비의 동생) 대립 → 동인(김효원 집이 동쪽·이황과 조식 학맥)·서인(심의겸 집이 서쪽·이이와 성혼 학맥).
- 동인의 분화 — 정여립 모반 사건(1589, 기축옥사)과 건저 문제(세자 책봉)를 거치며 서인에 대한 태도로: 남인(온건, 유성룡·퇴계 학맥) vs 북인(강경, 정인홍·남명 학맥 — 광해군 대 집권).
- 성리학의 두 거장 — 이황(주리론, 「성학십도」 — 군주 스스로의 수양 강조, 일본 성리학에 영향, 도산서원) vs 이이(주기론, 「성학집요」 — 현명한 신하가 군주를 이끔, 수미법 등 현실 개혁론, 10만 양병설).
- 성리학적 사회 질서의 확산 — 「주자가례」(관혼상제)·「소학」 보급, 족보 편찬(안동 권씨 성화보 — 현존 최고), 서얼 차별·재가 규제 강화 — 가부장 질서가 뿌리내리기 시작(완성은 조선 후기).
시험 포인트
- 붕당 발생 = 이조 전랑 + 척신 청산 태도. 동인(이황·조식) vs 서인(이이·성혼) 학맥.
- 이황(성학십도·도산서원·일본 영향) vs 이이(성학집요·수미법·10만 양병) — 최다 빈출 비교.
- 동인 → 남인(온건)·북인(강경) 분화 계기 = 정여립 사건·건저 문제.
6 임진왜란 (1592~1598) — 바다와 의병이 지킨 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한 뒤 "명을 치러 가는 길을 빌리자"(정명가도)며 침공합니다. 초반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는 위기를 수군·의병·명군 참전의 3박자로 뒤집었습니다.
- 초반 붕괴 — 부산진(정발)·동래성(송상현 —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함락 → 신립의 충주 탄금대 배수진 붕괴 → 선조 의주 파천(명에 원군 요청).
- 이순신의 제해권 — 옥포(첫 승) → 사천(거북선 첫 출전) → 당포·당항포 → 한산도 대첩(학익진 — 왜 수군 주력 궤멸): 왜군의 수륙 병진 전략 좌절, 곡창 전라도 보전, 보급선 차단.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의병과 관군의 반격 — 곽재우(홍의장군, 의령 — 최초 의병), 조헌·영규(금산), 고경명, 정문부(북관대첩), 서산대사·사명대사(승병). 김시민의 진주 대첩, 조명 연합군의 평양 수복(1593.1), 권율의 행주 대첩. 휴전기에 훈련도감(포수·사수·살수 삼수병)·속오법 정비.
- 정유재란과 종전 — 협상 결렬로 재침(1597) → 칠천량 참패(원균) → 백의종군에서 복귀한 이순신의 명량 해전("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 13척 vs 133척) → 히데요시 사망 → 노량 해전(1598, 이순신 전사 —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 전쟁의 영향 — 조선: 인구 격감·토지 대장(양안) 소실, 경복궁·불국사·사고 소실, 공명첩 남발(신분제 동요의 시작), 도공 납치(이삼평 — 일본 아리타 도자기). 일본: 에도 막부 성립, 성리학·도자기 전래 — 국교 재개 요청 → 통신사 파견(1607~, 문화 사절). 명: 국력 소진 → 여진(후금) 성장 — 동아시아 질서 재편.
시험 포인트
- 3대첩: 한산도(이순신·해전·학익진) / 진주(김시민) / 행주(권율) — 장소·인물 매칭.
- 한산도 대첩의 전략적 의미 = 제해권 + 보급 차단 + 전라도 보전. 서술형 단골.
- 영향 3국 세트: 조선(신분제 동요) — 일본(에도 막부·도자기) — 명(쇠퇴→후금). 통신사 = 전후 문화 사절.
7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병자호란
전후 복구를 이끈 광해군은 명·후금 사이에서 실리적 중립 외교를 폈지만, 서인의 인조반정으로 폐위됩니다. 이후 '친명배금'으로의 전환이 두 차례 호란을 부릅니다.
사진 — 남한산성: 대한민국 정부(코리아넷), CC BY-SA 2.0
- 광해군의 내치 — 양전·호적 정비, 대동법 경기 첫 시행(1608, 이원익), 동의보감(허준, 1610 — 유네스코 기록유산). 전후 복구의 실용주의.
- 중립 외교 — 명의 원군 요청에 강홍립 1만 파병하되 "형세를 보아 행동하라"는 밀명 → 사르후 전투(1619)에서 후금에 항복 — 명분(재조지은)과 실리 사이의 줄타기. + 영창대군 사사·인목대비 유폐(폐모살제) → 서인의 인조반정(1623) 명분.
- 정묘호란(1627) —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 이괄의 난(1624) 잔당의 후금 투항 → 후금 침입 → 정봉수(용골산성)·이립 의병 → 형제의 맹약으로 강화.
- 병자호란(1636) — 후금이 국호 '청'·황제 칭호, 군신 관계 요구 → 조선 거부(척화). 청 태종 12만 침입(한겨울 속전속결) → 인조 남한산성 47일 농성(강화도 함락, 소현세자빈·봉림대군 등 피란처 붕괴) → 삼전도의 굴욕(삼배구고두례) — 군신 관계, 소현세자·봉림대군 인질, 척화파 3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 처형.
- 주전 vs 주화 — 김상헌(척화: "명분 없는 삶은 죽음만 못하다") vs 최명길(주화: "나라가 있어야 명분도 있다") — 국제 정치의 고전적 논쟁. 이후 효종의 북벌론(송시열·이완, 어영청 강화 — 실행 못 함), 나선 정벌(러시아, 조총 부대 2회 — 북벌 준비 병력의 역설적 활용), 숙종 대 백두산정계비(1712).
시험 포인트
- 광해군 3종: 중립 외교(강홍립) + 대동법 시작 + 동의보감. 인조반정의 명분(폐모살제)까지.
- 정묘호란(형제 관계) → 병자호란(군신 관계·삼전도) — 결과 구분.
- 김상헌(척화) vs 최명길(주화) 사료 대비. 북벌(효종)과 나선 정벌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