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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 Motoko C. K., CC BY 4.0

경기전

慶基殿

왕조가 시조의 얼굴을 맡겨 둔 곳

조성 연대1410년(태종 10) 어용전으로 창건 — 1442년(세종 24) '경기전'으로 개칭🧭 여기 방향 보기

경기전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곧 어진을 모시기 위해 1410년(태종 10) 전주에 세운 건물이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이자 조선 왕실이 뿌리로 삼은 고장이었고, 그래서 왕조는 이 도시에 시조의 얼굴을 두었다. 담장 안에는 어진을 봉안한 정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와 어진박물관, 대나무숲이 함께 있어서 한옥마을 초입의 이 한 구역이 사실상 조선사 야외 전시장 노릇을 한다.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정전은 2008년 따로 보물로 지정됐다.

📖 이야기

조선은 나라를 세운 뒤 시조의 얼굴을 여러 지방에 나누어 모셨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려고 1410년(태종 10) 전주에 세운 건물이 어용전이고, 1412년에는 태조진전으로 불렸으며, 1442년(세종 24) 전국 어용전의 이름을 정비하면서 '경기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 때 건물은 불타 사라졌다. 지금 담장 안에서 보는 정전은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세운 것이고, 1872년(고종 9)에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태조의 어진은 조선의 여섯 곳에 나뉘어 모셔져 있었는데, 오늘날 남은 것은 전주본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조선 초에 그려진 원본이 아니라 1872년(고종 9)에 옮겨 그린 모사본이다. 이 1872년 어진은 1987년 보물 제931호로 지정됐다가 2012년 국보 제317호로 승격됐다. 다만 방문자가 정전이나 어진박물관에서 늘 마주하는 것은 이 국보 자체가 아니다 — 진본은 보존을 위해 수장고에 보관되고, 상설 전시에 걸리는 것은 전시용 모사본이다. 진본이 관람객 앞에 나오는 것은 특별전이 열리는 짧은 기간뿐으로, 2024년 가을의 공개도 10월 29일부터 11월 12일까지 약 2주에 그쳤다. 여기서 보는 것은 '왕의 얼굴'이 아니라 '왕의 얼굴을 지켜 온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확하다.

경내 한쪽에는 전주사고가 서 있다. 조선은 실록을 춘추관·충주·성주·전주 네 곳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나머지 세 곳이 모두 불타고 전주사고본만 살아남았다. 건물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옮겼기 때문이다. 정읍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이 사재를 털어 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산으로 이안했고, 그렇게 지켜진 전주사고본이 오늘 우리가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바탕이 되었다. 지금 서 있는 전주사고 건물 자체는 1991년에 복원한 것이다 — 남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책이었다는 사실이 이 자리의 요점이다.

볼거리

📷 주뚜기1, CC BY-SA 4.0

🚶 혼자 둘러보기 코스

  1. 1홍살문
    붉은 기둥 위에 화살 모양 살을 얹은 문으로, 이 안쪽이 신성한 영역임을 알리는 표시다. 경기전 답사는 이 문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2. 2하마비
    정문 앞에 선 '말에서 내리라'는 비석. 해태 두 마리가 등으로 비석을 받친 드문 형태이니, 지나치지 말고 낮게 앉아 한 번 들여다볼 것.
    💡 왕이 사는 곳이 아니라 왕의 초상화가 있는 곳에 세운 비석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들어가면, 정전에서 보는 그림의 무게가 달라진다.
  3. 3정전
    1614년 중건된 본전. 좁고 긴 돌길을 따라 다가서면 열린 문 정면에 태조 어진이 걸려 있다(통상 전시용 모사본).
    💡 마당에서 문틀을 액자 삼아 정면으로 찍으면 어진과 단청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4. 4조경묘
    전주 이씨 왕실의 뿌리를 기리는 사당으로, 경기전 경내에 함께 있다. 어진을 보고 난 뒤에 들르면 '왜 하필 전주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5. 5전주사고
    실록을 보관하던 누각식 서고. 1592년 네 사고 중 이곳의 실록만 살아남았고, 지금 서 있는 건물은 1991년 복원본이다.
    💡 기둥이 왜 이렇게 높은지 올려다볼 것 — 바닥을 땅에서 띄운 것이 책을 지키는 설계였다.
  6. 6어진박물관
    경기전 입장권으로 그대로 들어갈 수 있다. 어진을 그리고 옮기고 지켜 온 절차를 모아 두어, 앞서 본 정전과 전주사고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상설 전시는 모사본이다. 국보로 지정된 1872년 진본은 특별전 기간에만 잠깐 공개된다.
  7. 7대나무숲
    전주사고 동편의 대숲. 사극 촬영지로 알려져 경내에서 가장 붐비는 포토존이 됐고, 걷기를 마무리하기에도 좋은 자리다.
    💡 여기서 정문 쪽으로 나가면 곧바로 한옥마을 거리와 전동성당으로 이어진다.

🧭 방문 정보

관람 시간
계절별로 다르다 — 3~5월·9~10월 09:00~19:00 / 6~8월 09:00~20:00 / 11~2월 09:00~18:00 (입장 마감은 관람 종료 1시간 전)
휴무
⚠ 정기 휴무일은 공식 확인이 되지 않았다 — 방문 전 현지 안내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요금
성인 3,000원 · 어진박물관은 경기전 입장권으로 함께 관람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무료 · 매월 넷째 주 토요일 50% 할인
가는 법
⚠ 전주에는 지하철이 없다 — 전주역에서 시내버스로 약 25분, 택시로 약 10~15분. 전주 한옥마을 초입에 있어 마을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닿는다. (위치 좌표 출처: © OpenStreetMap contributors)
2026-08 기준

💡 알아두면 좋은 팁

🗺 함께 둘러보기

전동성당도보 1~2분
경기전 정문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붉은 벽돌 성당. 조선 왕조의 사당과 천주교 순교 성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구도 자체가 이 도시의 압축판이다.
전주 한옥마을문 앞에서 바로
경기전이 그 초입에 있어, 문을 나서면 곧바로 한옥 골목과 먹거리 거리가 이어진다.
풍남문도보권 (⚠ 정확한 소요 시간은 미확인)
옛 전주읍성의 남문으로,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 홀로 남아 있다. 한옥마을 답사를 성문에서 시작하거나 끝맺기 좋다.
📚 한능검 포인트

경기전은 조선 건국과 기록 문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소재다. 1410년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려 세워졌고(1442년 '경기전'으로 개칭), 전주본 태조 어진은 조선 여섯 곳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2012년 국보로 지정됐다. 특히 전주사고는 임진왜란 때 춘추관·충주·성주 사고가 모두 소실된 가운데 실록이 유일하게 보전된 곳으로, 정읍 유생 안의·손홍록이 내장산으로 옮겨 지킨 덕이었다 — 시험에서는 '건물이 남았다'가 아니라 '서적이 이안돼 살아남았다'는 점이 함정으로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