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동성당
순교의 땅 위에 세운 붉은 벽돌 성당
전동성당은 전주 한옥마을 입구, 경기전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붉은 벽돌 성당이다. 조선 왕조의 사당인 경기전 맞은편에 서양식 성당이 서 있는 이 풍경 자체가 전주라는 도시의 시간 지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 자리는 1791년 신해박해로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순교의 땅으로, 1908년 착공해 1931년 축복식을 올린 호남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다. 로마네스크를 바탕으로 종탑과 계단탑에 비잔틴풍 돔을 얹은 외관은 한옥 지붕들 사이에서 유난히 이국적으로 보인다.
📖 이야기
이야기는 성당보다 백 년 이상 앞선다. 1791년(정조 15) 진산에 살던 윤지충 바오로는 어머니의 상을 당해 신주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가 이를 함께했다. 조상 제사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던 조선에서 이는 곧 강상(綱常)을 무너뜨리는 죄로 다뤄져 두 사람은 그해 처형되었다 —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다. 이른바 신해박해(진산사건)의 처형지가 바로 옛 전주읍성 풍남문 밖, 지금 성당이 서 있는 이 자리였다. 10년 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관검·윤지헌 등이 다시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박해의 기억 위에 성당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다. 1891년(고종 28) 전주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보두네 신부가 순교지 일대의 부지를 사들였고, 1908년 마침내 공사가 시작되었다.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의 내부 건축을 맡았던 프와넬 신부가 그렸다. 1914년 외관 공사가 마무리되었지만 마무리 작업과 내부 정비가 이어져, 실질적인 완공을 알리는 축복식은 1931년에야 열렸다. 이때 쓰인 화강암 초석과 붉은 벽돌 일부는 헐린 전주읍성 성벽에서 나온 자재였다 — 순교자들을 가둔 성벽의 돌이 그들을 기리는 성당의 주춧돌이 된 셈이다.
건축은 로마네스크를 기본으로 하되 종탑과 좌우 계단탑 위에 비잔틴풍 돔을 얹은 절충 양식이다. 반원 아치의 창과 출입구,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섞어 짠 벽면이 로마네스크의 문법이라면, 세 개의 둥근 돔은 그 위에 얹힌 다른 시대의 언어다. 호남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서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시복했는데, 시복식이 열린 곳은 서울 광화문광장이었고 전동성당은 그들이 피를 흘린 순교의 자리로서 그 기억의 중심에 있다.
✦ 볼거리
- ›붉은 벽돌 파사드와 전주읍성의 돌붉은 벽돌에 회색 벽돌로 띠와 아치 무늬를 넣어 짠 정면 벽. 기단의 화강암과 벽돌 일부는 헐린 전주읍성 성벽에서 가져온 자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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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자재의 재사용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이 성당의 서사 그 자체다. 1791년과 1801년의 순교자들이 갇히고 끌려 나온 읍성이 개항 이후 헐리자, 그 돌과 벽돌이 순교지에 세워지는 성당의 몸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반원 아치의 창과 출입구, 벽면을 가로지르는 벽돌 띠가 로마네스크 특유의 리듬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 ›비잔틴풍 돔을 얹은 세 개의 탑가운데 높은 종탑과 좌우 계단탑에 각각 둥근 돔을 얹었다. 로마네스크 몸체 위에 비잔틴 양식을 절충한 이 실루엣이 전동성당을 멀리서도 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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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보면 세 개의 돔이 좌우 대칭으로 솟아 한옥마을의 낮고 긴 기와지붕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사진은 성당 앞 광장에서 조금 물러나 세 탑이 한 화면에 들어오도록 잡으면 좋고, 길 건너 경기전 쪽에서 담장 너머로 올려다보는 각도도 이 도시의 두 시간대를 한 장에 담는 구도가 된다.
- ›순교의 자리 — 옛 풍남문 밖 처형터성당이 앉은 땅 자체가 볼거리다. 1791년 윤지충·권상연이, 1801년 유항검 등이 처형된 옛 전주읍성 풍남문 밖 형장이 바로 이곳이다.
- ›경기전과 마주 선 자리길 건너 도보 1~2분 거리에 조선 왕조의 사당 경기전이 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왕조의 성소와 순교자의 성당이 마주 보는 풍경은 전주에서만 볼 수 있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이곳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지금도 미사가 봉헌되는 성당이다. 마당과 성당 안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전례가 진행 중일 때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다. 촬영도 기도하는 사람과 제대 쪽을 피해 조심스럽게 하자.
- 내부를 꼭 보고 싶다면 방문 전에 성당(063-284-3222)으로 개방 여부와 미사 시간을 확인하자. 신자 외 출입을 제한한 시기가 있었고 안내 시간표도 자주 바뀐다.
- 경기전 관람을 마친 늦은 오후에 들르면 기우는 햇빛에 붉은 벽돌이 짙게 물들어 사진이 가장 잘 나온다. 어두워진 뒤에는 주변이 생활 공간이자 신자들이 오가는 곳이니 조용히 둘러보자.
🗺 함께 둘러보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대표 사례가 이 한 자리에 겹쳐 있다. 1791년 신해박해(진산사건)는 윤지충·권상연이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거부한 사건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이며, 1801년 신유박해에서는 유항검 등이 처형되고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이어진다. 두 박해의 연도와 계기를 구분하는 문항이 자주 나오며, 1866년 병인박해는 이 장소와 무관하니 혼동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