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全州韓屋마을왕조의 본향에 모인 700여 채의 기와지붕
전주 한옥마을은 700여 채의 기와집이 도심 한복판에 모여 있는 동네다. 이 마을이 선 자리는 후백제의 견훤이 900년 완산주에 도읍을 두었던 땅이자,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의 본향 — 왕조를 연 임금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풍패지향'이라 불린 고장이다. 다만 지금 눈앞의 한옥 경관 자체는 조선의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산물로, 1905년 이후 일본인 상권이 도심을 잠식하자 조선인들이 교동·풍남동으로 모여들며 1930년 전후에 형성됐다. 오늘은 한복을 빌려 입은 사람들이 골목을 채우고, 언덕 위 오목대에 오르면 그 기와지붕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이야기
전주의 역사는 두 번의 왕조와 맞물려 있다. 첫 번째는 후백제다. 견훤은 900년 완산주, 곧 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두었다. 두 번째는 조선이다.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이었고, 그래서 조선 왕실은 이 도시를 왕조의 뿌리로 대했다 — 왕조를 연 임금의 고향이라는 뜻의 '풍패지향'이 전주를 가리키는 말이 된 이유다. 1410년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경기전이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 세워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의 한옥마을은 그 오랜 내력에 비해 훨씬 젊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인 상권이 다가동과 중앙동을 차지하며 도심으로 밀고 들어왔고, 1911년에는 전주읍성이 헐려 남문인 풍남문만 남았다. 밀려난 조선인들이 교동·풍남동 일대로 모여들면서 1930년 전후에 이르러 지금 같은 한옥 밀집 경관이 만들어졌다. 같은 시기 서울 북촌에서도 도시한옥이 빠르게 늘고 있었으니, 전주의 기와지붕 역시 전통이 그대로 남은 결과라기보다 식민지 도시에서 조선인의 자리를 지키려던 20세기의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이 마을을 걷는 일은 시대가 다른 층위를 오르내리는 일이 된다. 언덕 위 오목대에는 1380년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종친들을 모아 승전 잔치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붙어 있고, 마을 동쪽의 전주향교에는 조선 지방 교육의 자리가, 남쪽 입구의 풍남문에는 헐려 나간 읍성의 마지막 조각이 남아 있다. 그 사이를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골목마다 음식 냄새가 난다 — 전주시는 2012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 볼거리
- ›오목대와 이목대마을 동쪽 언덕에 오르면 기와지붕이 발밑으로 펼쳐지고 그 너머로 전주 시가지가 선다. 1380년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종친들과 승전 잔치를 열었다고 전하는 자리이자, 마을 전경 사진이 거의 다 여기서 나오는 전망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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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를 눈여겨볼 만하다. 1380년 황산대첩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린 1388년보다 8년 앞선다 — 오목대의 잔치는 '회군 뒤'가 아니라 조선 건국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시점의 일이다. 그 자리에서 이성계가 한 고조의 '대풍가'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하고, 언덕에는 1900년 고종의 친필비가 서 있다. 육교를 건너 약 70m 떨어진 이목대는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태어난 자리로 전해지는 곳으로, 오목대와 이목대는 함께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됐다(1974).
- ›700여 채의 기와지붕과 태조로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550m의 태조로가 답사의 중심 축이다. 그 좌우로 700여 채의 한옥이 골목을 이루고, 공방과 찻집, 한복 대여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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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 채'라는 숫자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그대로 말해 준다. 한두 채가 보존된 유적이 아니라 동네 하나가 통째로 한옥으로 남은 경우이고, 그래서 걷는 방식도 달라진다 — 정해진 관람 순서가 없고, 큰길에서 골목으로 한 번 꺾어 들어갈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 다만 이 기와지붕들은 조선의 것이 아니라 1930년 전후에 새로 지어진 집들이다. 큰길가의 상업 한옥과 골목 안쪽의 살림집이 뚜렷이 다르게 생겼으니, 두 가지를 견주어 보는 것도 이 마을을 읽는 한 방법이다.
- ›전주향교마을 동쪽 끝의 조선 지방 교육기관으로,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큰길의 번잡함이 갑자기 사라지는 구역이라 마을 걷기를 여기서 마무리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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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4년에 창건됐다고 전하며, 지금 자리로 옮겨 온 것은 1603년이다. 배치가 특이해서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앞에,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학 공간이 뒤에 놓인 전묘후학(前廟後學) 구조를 하고 있다. 마당의 은행나무는 수령 약 400년으로 알려져 있고, 11월이면 노랗게 물든 모습이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향교는 사적 제379호로 지정돼 있다.
- ›풍남문전주부성의 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문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마을 남쪽 입구에 서 있어 답사의 출발점으로 삼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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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때 파괴됐고, 영조 43년(1767) 화재를 겪은 뒤 이듬해 다시 세워졌다. 그리고 1911년 전주읍성이 헐릴 때 이 남문만 남았다 — 한옥마을이 왜 하필 이 자리에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문이기도 하다. 성벽이 사라지고 일본인 상권이 도심을 차지하는 동안, 조선인들은 이 문 안팎의 교동·풍남동으로 모여들어 집을 지었다. 지정 번호는 보물 제308호다.
- ›음식 창의도시의 식탁전주시는 2012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됐다 —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다. 전주비빔밥과 한정식으로 알려진 도시답게, 마을 안에서도 먹는 일이 관람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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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를 구분해 두면 좋다. 첫째, 이 지정을 받은 주체는 한옥마을이 아니라 전주시 전체다. 둘째,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세계유산과 전혀 다른 제도로, 문화 산업의 도시 간 협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유네스코에 등재된 마을'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마을 남쪽 풍남문 곁의 남부시장은 콩나물국밥으로 이름났고, 2층 청년몰에는 젊은 가게들이 모여 있어 마을의 관광 상권과는 또 다른 결의 식탁을 만난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풍남문마을 남쪽 입구의 성문에서 시작한다. 전주부성의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남문으로, 1911년 읍성이 헐릴 때도 이 문만 살아남았다. 사라진 성벽을 먼저 떠올리고 걷기 시작하면 마을의 위치가 다르게 읽힌다.💡 성문 안쪽과 바깥쪽의 인상이 꽤 다르니 양쪽에서 한 번씩 올려다보자.
- 2태조로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550m의 중심 거리. 한복 차림의 사람들과 공방·찻집이 이어진다. 이 길가의 경기전과 맞은편 전동성당은 각각 별도 상세 페이지에서 다루니, 여기서는 길 자체를 걷는 데 집중해도 좋다.💡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구간이다 — 이른 아침에 같은 길을 걸으면 전혀 다른 동네처럼 보인다.
- 3오목대동쪽 언덕을 올라 누각에 이르면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1380년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오는 길에 종친들과 승전 잔치를 열었다고 전하는 자리이며, 1900년 고종의 친필비가 함께 서 있다.💡 이 마을의 대표 사진은 대부분 여기서 나온다 — 이 페이지의 첫 장면도 같은 자리다.
- 4이목대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 약 70m.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태어난 자리로 전해지는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197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로 함께 지정됐다.💡 육교를 건너는 길이 그대로 자만벽화마을 입구로 이어진다.
- 5자만벽화마을이목대 쪽 언덕에 붙은 작은 동네로, 좁은 골목의 담벼락이 그림으로 덮여 있다. 기와지붕만 보다가 색이 확 바뀌는 구간이라 걷는 리듬이 한 번 끊긴다 — 그게 오히려 좋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동네다. 대문과 창문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추자.
- 6전주향교언덕에서 내려와 동쪽 끝으로 향하면 조선의 지방 교육기관이 나온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이 앞에, 강학 공간이 뒤에 놓인 전묘후학 배치이고, 마당의 은행나무는 수령 약 400년으로 알려져 있다.💡 붐비는 태조로와 대비가 가장 큰 곳이라 마지막 정거장으로 두면 걷기가 조용하게 끝난다.
- 7남부시장과 야시장풍남문 곁의 재래시장으로 도보 5분 내외 거리다. 콩나물국밥으로 이름났고, 2층 청년몰에는 젊은 가게들이 모여 있다. 금·토 저녁에는 야시장이 서서 마을의 하루를 늦게까지 이어 준다.💡 야시장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니 방문 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전주에는 지하철이 없다. 전주역에서 시내버스로 약 25분, 택시로는 약 10~15분 거리이고, 버스 노선은 개편이 잦으니 현장 안내나 지도 앱으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마을 안은 전부 걸어서 도는 규모다.
- 한복 대여는 시간제로 운영되고 대체로 2만 원 안팎부터 시작하지만, 업체와 옷에 따라 다르다. 한복을 입으면 일부 유료 시설에서 면제나 할인이 적용될 수 있으니 현장에서 확인하는 게 확실하다.
- 오목대와 이목대는 언덕 위에 있고 둘은 육교로 이어진다(약 70m). 마을 전경을 보려면 이 오르막을 한 번은 올라야 하니 편한 신발이 낫다.
- 시기를 고를 수 있다면 11월이 좋다 — 전주향교 은행나무가 이 무렵 절정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일로는 금·토가 남부시장 야시장과 겹친다.
- 마을의 한옥 상당수는 지금도 살림집이거나 영업 중인 가게다. 담장 안을 들여다보거나 남의 집 대문 앞을 막고 촬영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기본 예절이다.
🗺 함께 둘러보기
전주는 후백제 견훤이 900년 완산주에 도읍을 둔 곳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조선 건국 서사와 묶여 출제된다. 특히 전주사고에 보관되던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4대 사고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건물이 무사했던 것이 아니라 안의와 손홍록이 서적을 내장산으로 옮겨 지켜낸 결과라는 점이 자주 함정으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