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죽헌
烏竹軒검은 대나무에 둘러싸인 집,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난 자리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아들 율곡 이이를 낳은 집이다. 이름은 집을 두른 검은 대나무 오죽(烏竹)에서 왔다. 15세기에 지어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금 쓰는 5천 원권 앞면에 이이의 초상과 함께 이 집이 그려져 있고, 5만 원권 인물이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다.
📖 이야기
이 집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소유의 계보다. 강릉 최씨 집안이 지은 집은 최응현의 사위 이사온에게, 이사온의 사위 신명화에게, 다시 신명화의 사위 권처균에게 넘어갔다. 네 번의 승계가 모두 딸과 사위를 통했다.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조선의 상속이 실은 조선 전기까지 딸과 아들을 크게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한 채의 집에 계보로 남아 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도 마지막 상속자인 권처균의 호에서 왔다. 집이 사람에게 이름을 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에 이름을 준 셈이다.
신명화의 딸 신사임당은 1536년 이 집의 별당에서 아들을 낳았다. 검은 용이 바다에서 날아드는 꿈을 꾸었다고 전해 그 방을 몽룡실이라 부른다. 그렇게 태어난 이이는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두 축이 되었고, 두 사람의 학문은 뒤에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갈라져 붕당의 학문적 뿌리가 된다. 1788년 정조는 이이의 친필 격몽요결과 그가 어릴 때 쓰던 벼루를 보관할 어제각을 세우라 명했다. 왕이 신하의 생가에 건물을 지어 준 것이다.
✦ 볼거리
- ›몽룡실신사임당이 1536년 율곡 이이를 낳은 방. 검은 용이 바다에서 날아오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이름이 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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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본채는 정면 3칸·측면 2칸의 크지 않은 집이다. 화려한 곳을 찾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툇마루 앞에서 방 하나의 크기를 먼저 가늠해 보는 편이 낫다.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가 태어난 자리가 이 정도 규모라는 사실 자체가 이 집이 주는 인상의 절반이다.
- ›본채의 목조 구조주심포 계통에 익공 요소가 섞인 팔작지붕. 건축사에서 조선 전기 주택의 이른 사례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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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는 주심포는 고려 이래의 오래된 방식이고, 익공은 조선에서 자리 잡은 간소한 방식이다. 두 계통이 한 건물에 섞여 있다는 점이 이 집을 연대 판단의 참고 사례로 만든다. 처마 밑을 올려다보면 기둥 바로 위에만 짜 맞춘 부재가 보인다.
- ›어제각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세운 전각. 이이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쓰던 벼루를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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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직접 지시해 신하의 생가에 세운 건물이라는 점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정조가 이이의 유품을 궁으로 가져가는 대신 태어난 집에 그대로 두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붉은 기둥과 초록 창호에 단청까지 올려, 흰 벽의 살림집들 사이에서 이 한 채만 색이 다르다.
- ›문성사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 그의 시호 '문성'에서 이름을 땄으며 1970년대 정화사업 때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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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는 죽은 뒤 그 사람의 생애를 두 글자로 요약해 붙이는 이름이다. 문(文)은 학문을, 성(成)은 이룸을 뜻한다. 사당 자체는 20세기에 지어진 것이라 건축 유산으로 볼 자리는 아니지만, 소나무 숲을 등지고 선 배치가 경내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지점이다.
- ›율곡매오죽헌이 지어질 무렵 심긴 것으로 보아 수령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매화나무.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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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과 이이가 직접 돌보았다고 전한다. 다만 지금 기대를 갖고 가면 실망할 수 있다. 2017년부터 수세가 급격히 약해져 나무의 대부분이 말라 죽었고, 남은 가지에서만 꽃이 핀다. 강릉시가 후계목을 길러 보존을 잇고 있다. 600년을 산 나무가 어떻게 늙는지를 보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다.


🚶 혼자 둘러보기 코스
- 1자경문경내로 드는 문. 이름은 이이가 스스로를 경계하려 지은 글 '자경문(自警文)'에서 왔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나온다. 여기서부터 오죽 숲이 길 양옆을 따라간다.
- 2오죽헌 본채와 몽룡실이이가 태어난 방이 있는 별당. 정면 3칸의 작은 집이라 서둘러 지나기 쉽다.💡 툇마루 앞에서 처마 밑 짜임을 한 번 올려다볼 것.
- 3율곡매본채 뒤편 모퉁이의 매화나무. 수령 약 600년의 천연기념물이다.💡 3월 말 개화기에도 꽃은 남은 가지에만 핀다.
- 4문성사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 뒤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선다.
- 5어제각정조가 세우게 한 전각.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한다.💡 단청을 올린 유일한 건물이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 6오죽헌·시립박물관같은 담장 안에 있는 박물관. 향토 민속 자료와 강릉 지역 출토품을 함께 본다.💡 입장권 한 장으로 함께 들어간다. 1월 1일·설·추석 당일에는 이 실내 전시실만 닫는다.
- 7오죽 숲집 이름의 유래가 된 검은 대나무 숲. 줄기가 실제로 검다.💡 나올 때 담장을 따라 걸으면 마지막에 만난다.
🧭 방문 정보
💡 알아두면 좋은 팁
- 관람 시간은 18시까지지만 입장 마감은 17시다. 한 시간 여유를 두고 도착할 것.
- 강릉에는 지하철이 없다. KTX 강릉역에서 시내버스나 택시로 이동한다.
- 경내는 평지에 가깝고 한 바퀴가 넓지 않아 박물관까지 합쳐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 경포호가 걸어갈 거리는 아니다. 오죽헌과 경포대를 같은 날 묶는다면 버스나 택시로 옮기는 편이 낫다.
🗺 함께 둘러보기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이이는 이황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두 축을 이루었는데, 이황이 「성학십도」에서 군주 스스로의 수양을 앞세운 데 비해 이이는 「성학집요」와 「동호문답」에서 현실 제도의 개혁을 강조했다. 두 사람의 학문은 뒤에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로 갈라져 붕당의 학문적 뿌리가 된다. 이 집이 딸과 사위를 따라 네 번 상속된 것도 조선 전기의 재산 상속 관행을 보여 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