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카드
1896년 박승직상점으로 출발한 국내 최고(最古) 기업.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사업을 전환했다.
📖 기업 이야기
두산은 개항기인 1896년 박승직이 서울 종로에 문을 연 포목상 '박승직상점'에서 시작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이다. 광복 후 맥주(동양맥주·OB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사업으로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두산은 식음료 등 소비재 부문을 정리하고 발전 설비·건설기계 중심의 중공업 그룹으로 사업 구조를 크게 바꾸었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을 인수한 것이 그 전환의 상징이다.
일제강점기 유일한이 세운 민족 제약기업.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이념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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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은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한 유일한이 경성에 세운 제약회사로, 처음에는 미국 의약품을 들여와 팔다가 1933년 소염진통제 안티푸라민 등 국산 의약품을 개발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기업으로 꼽힌다.
유일한은 기업의 이윤은 사회의 것이라는 신념으로 종업원 지주제와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했고, 1971년 세상을 떠나며 유언으로 전 재산을 사회와 교육 사업에 기부했다. 이러한 기업 윤리가 오늘날까지 유한양행을 상징한다.
창업주 유일한의 삶 자체가 해외 한인의 역사다. 1904년 아홉 살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미시간대학을 마쳤고, 1922년 숙주나물 통조림 회사 라초이(La Choy)를 공동 창업해 성공했다 — 그 자본으로 귀국해 세운 회사가 유한양행이다. 광복 직전인 1945년에는 쉰 살의 나이로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한반도 침투 계획 '냅코 작전'에 제1조 책임자로 참여해 특수훈련까지 받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일본 항복으로 실행 전 종전).
1938년 삼성상회에서 출발해 제조업과 전자·반도체로 성장한 한국의 대표 기업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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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1938년 이병철이 대구에 세운 삼성상회에서 출발했다. 6·25 전쟁 이후 제일제당(1953)과 제일모직(1954)을 세워 설탕·직물 등 수입 대체 제조업으로 성장했는데, 이는 1950년대 삼백산업(제당·제분·면방직)의 대표 사례이다.
1969년 삼성전자를 세워 전자산업에 진출했고,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뒤 1983년 이병철의 '2·8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사업에 본격 투자하여 뒷날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 반도체의 씨앗에는 재미 한인 과학자가 있다. 1974년 삼성이 인수한 한국반도체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를 전공하고 모토로라에서 일한 강기동 박사가 귀국해 부천에 세운 회사였다. 미국에서 익힌 기술로 불모지에 뿌려진 이 씨앗이 인수와 투자를 거쳐 오늘의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로 자랐다.
1947년 현대토건에서 출발해 건설·자동차·조선으로 성장한 범현대 그룹의 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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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1947년 정주영이 세운 현대토건사에서 출발했다(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가 모태). 건설업으로 성장한 현대는 1968~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하며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사업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72년 울산에 조선소를 착공해 세계적인 조선업체로 성장하고 1967년 세운 현대자동차로 자동차산업을 키우는 등, 현대는 1970년대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화를 대표하는 기업집단이 되었다. 2000년대에 현대차·HD현대 등으로 계열이 분리되었다.
정주영은 강원도 통천(현 북한 지역) 출신의 실향민으로, 소년 시절 아버지가 소 판 돈을 들고 고향을 떠난 일화로 유명하다. 1998년 여든셋의 그는 '그 소 값을 천 배로 갚는다'며 소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두 차례 방북했다 — 분단 이후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한 첫 사례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장면으로 기록된다.
1947년 락희화학에서 출발해 전자(금성사)와 화학을 양대 축으로 성장한 기업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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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1947년 구인회가 부산에 세운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시작했다. 화장품(럭키크림)과 플라스틱으로 성장한 뒤, 1958년 금성사를 세워 전자산업에 진출했고 1959년 국산 최초의 라디오 A-501을 만들었다.
이후 화학과 전자를 양대 축으로 삼아 성장했으며, 1995년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었다. 2005년에는 GS그룹이 계열 분리되었다.
1962년 11월 금성사는 라디오 62대를 미국 뉴욕에 실어 보냈다. 국산 전자제품의 첫 수출이었다. 이 소박한 62대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훗날 세계 가전 시장의 골드스타(GoldStar), 그리고 오늘의 LG 브랜드로 이어졌다.
1948년 도쿄에서 껌 사업으로 출발해 1967년 롯데제과로 모국에 진출, 유통·관광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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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재일교포 신격호가 1948년 일본 도쿄에 세운 (주)롯데에서 시작했다. 껌과 제과로 일본에서 성공한 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1967년 롯데제과를 세워 모국에 진출했다.
이후 롯데는 백화점·마트 등 유통과 호텔·관광 사업으로 확장하며 국내 대표적인 유통 기업집단으로 성장했고, 2017년 서울에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열었다.
'롯데'라는 이름에는 재일 한인 청년의 문학이 담겨 있다. 신문·우유 배달로 학비를 벌며 와세다실업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한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샤롯데에게 감명받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바라며 1948년 회사 이름을 롯데로 지었다.
화약 제조로 시작해 방산·화학·에너지·금융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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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1952년 김종희가 세운 한국화약에서 출발했다. 6·25 전쟁 직후 국내에 부족했던 산업용 화약을 국산화해 광업·건설의 기초 자재를 공급했고, 이는 전후 복구와 경제 개발 계획 시기의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을 뒷받침했다.
이후 석유화학·기계·금융으로 사업을 넓혔고 1993년 사명을 한화로 바꾸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와 방위 산업, 조선, 우주 발사체 분야로 확장하며 사업 구조를 다각화했다.
삼성에서 분리된 제일제당이 식품을 넘어 바이오·문화 산업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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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1953년 삼성이 세운 첫 제조업체로, 설탕·밀가루 등 이른바 '삼백산업'(제당·제분·면방직) 품목의 생필품을 전후 사회에 공급했다. 원조 물자에 의존하던 1950년대 소비재 국산화의 대표 사례였다.
1990년대 들어 삼성그룹에서 분리를 시작해 1997년 완전히 독립했고, 이후 식품·바이오와 함께 영화·방송 등 문화 산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식품의 세계화는 CJ의 또 다른 서사다. 2010년 미국에 진출한 비비고 만두는 'dumpling' 대신 한국어 '만두(Mandu)'를 그대로 브랜드로 내세웠고, 2019년 무렵 25년간 시장을 지키던 중국계 브랜드를 제치고 북미 냉동만두 시장 1위에 올랐다. 영화에서는 CJ가 투자·배급한 '기생충'이 2020년 미국 아카데미 4관왕(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을 차지해 오랜 문화 산업 투자의 결실을 보여 주었다.
섬유에서 출발해 에너지·통신·반도체로 주력을 옮겨 온 사업 재편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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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1953년 최종건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재건해 세운 선경직물에서 시작했다. 수출 주도 성장기에 섬유·화학 사업으로 기반을 다진 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해 정유·석유화학으로,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통신으로 주력을 넓혔다. 2대 회장 최종현은 1인당 소득이 수백 달러이던 1974년 사재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세워 세계 명문대 유학을 지원했고, 이 장학생들은 해외 한인 학계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2012년에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를 새로운 축으로 삼았다. 섬유에서 에너지·통신·반도체로 이어지는 사업 전환은 한국 산업 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첨단 산업으로 옮겨 간 흐름과 맞물린다.
SK하이닉스의 뿌리는 1983년 세워진 현대전자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른바 '빅딜')으로 1999년 LG반도체를 합병했고,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꾸어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었다. 한 반도체 회사의 소속 변화에 외환위기 전후 한국 산업 재편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세계 최초 교육보험을 창안한 생명보험사, 광화문 교보문고와 글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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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는 1937년 스무 살에 만주로 건너가 다롄·베이징에서 곡물 유통업으로 사업 기반을 쌓았다. 스물네 살에는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세워 트럭을 전세 내 시골 곡창지대를 오가며 유통망을 직접 개척했다. 광복과 함께 10년간 쌓은 사업을 모두 버리고 맨손으로 귀국했다.
7세에 폐병을 앓아 학교를 다니지 못한 신용호는 독학으로 '천일독서'를 하며 배움의 뜻을 세웠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창안해 1958년 대한교육보험을 세웠다. 광화문 사옥에 내건 '광화문글판'은 계절마다 문구를 바꾸며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거리 풍경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화의 상징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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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종합제철은 1968년 정부 주도로 세워진 국영 기업으로, 박태준이 초대 사장을 맡았다. 건설 자금의 일부로 한일 국교 정상화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이 투입되었고, 이는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일관제철소를 세운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상징이 되었다. 박태준은 '조상의 피 값'인 이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영일만 바다에 몸을 던지겠다는 '우향우' 정신으로 건설을 이끌었고, 이는 '제철보국'이라는 창업 이념으로 이어졌다.
1973년 포항 1기 준공에 이어 광양제철소를 세우며 세계적 규모의 철강 회사로 성장했고, 2000년 민영화되었다. 값싸고 안정적인 철강 공급은 자동차·조선·건설 등 후방 산업의 성장 기반이 되었다.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결제·콘텐츠까지 넓힌 모바일 플랫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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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2010년 김범수가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뿌리로 한다.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에 무료 메신저로 이용자를 확보한 뒤 결제·금융·콘텐츠 등으로 서비스를 넓혔다.
김범수는 앞서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하고 2006년 아이위랩을 세운 벤처 1세대 창업가로, 2014년 카카오는 1995년 설립된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했다. 카카오의 성장은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벤처·모바일 시대의 흐름을 보여 준다.
카카오의 해외 서사는 만화 종주국 일본에서 쓰였다. 2016년 시작한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한국식 웹툰과 '기다리면 무료' 모델로 성장해 2020년 이후 일본 만화 앱 매출 1위에 올랐다 — 만화의 본고장에서 한국 기업의 플랫폼이 시장을 이끄는 역전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