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심화 · 역대 국왕 계보

묘호와 대수까지 한눈에

고구려부터 조선까지 · 왕조 → 대수 → 묘호 → 업적·시험 포인트

공부법 — 왕을 묻는 문항은 ① 업적과 왕 매칭 ② 조·종·군 시호 구분 ③ 원 간섭기 '충○왕' 같은 계열 ④ 조선 왕이 머문 궁궐(법궁·이궁)을 자주 냅니다. 카드의 시험 포인트에 오답 함정까지 정리했으니, 왕조 필터로 묶어 반복하세요.

👑 국왕 카드

고구려 6대재위 53~146
태조왕

옥저 정복·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 확립으로 중앙집권 기틀 마련

고구려 9대재위 179~197
고국천왕

부족적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왕위 부자 상속 확립·진대법 실시

시험 포인트을파소 등용·진대법(춘대추납 빈민 구휼) 실시 = 최초의 사회 복지 제도
고구려 15대재위 300~331
미천왕

낙랑군·대방군을 축출하여 대동강 유역을 확보하고 중국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냄

시험 포인트낙랑군(313)·대방군(314) 축출 = 한반도 내 중국 군현 소멸
고구려 17대재위 371~384
소수림왕

불교 수용·태학 설립·율령 반포로 중앙집권 국가 체제의 기틀 마련

시험 포인트불교 공인(372)·태학 설립(372)·율령 반포(373) = 중앙집권 체제 정비 3종 세트
고구려 19대재위 391~412
광개토대왕

만주 정복과 백제 압박·신라 구원으로 최대 영토를 개척하고 '영락' 연호 사용

시험 포인트광개토대왕릉비·호우명 그릇 = 신라 구원(400) 파병·독자 연호 '영락' 사용의 증거
고구려 20대재위 412~491
장수왕

평양 천도·남진 정책으로 백제 한성 함락·한강 유역 장악,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시험 포인트평양 천도(427)·남진 정책·한성 함락(475) → 나제동맹(신라·백제) 결성 계기
고구려 26대재위 590~618
영양왕

수의 거듭된 침입을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격퇴하고, 이문진에게 『신집』 5권을 편찬하게 함

시험 포인트살수대첩(612)에서 을지문덕이 우중문·우문술의 별동대 30만을 궤멸(「여수장우중문시」)·이문진 『신집』 5권 편찬(600)
고구려 28대재위 642~668
보장왕

연개소문 집권기에 즉위해 안시성에서 당 태종을 막아냈으나, 나당 연합군에 평양성이 함락되며 고구려가 멸망

시험 포인트안시성 싸움(645) 당 태종 격퇴·연개소문 사후 지배층 분열 → 평양성 함락(668)으로 고구려 멸망
백제 8대재위 234~286
고이왕

6좌평·16관등제 정비·관복제 제정·율령 반포로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 마련

시험 포인트6좌평·16관등·관복(자·비·청)·율령 정비 = 백제 국가 체제 정비의 시작
백제 13대재위 346~375
근초고왕

마한 병합·평양성 공격으로 고구려 고국원왕 전사시키며 백제 최대 전성기 이룩

시험 포인트고국원왕 전사(371)·부자 상속 확립·왜에 칠지도 하사·요서·규슈 진출설
백제 15대재위 384~385
침류왕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하여 사상적 통합의 기반 마련

백제 25대재위 501~523
무령왕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해 지방 통제 강화하고 중국 남조·왜와 교류하며 국력 회복

시험 포인트22담로에 왕족 파견·중국 남조(양) 교류·무령왕릉(벽돌무덤·지석) 발견
백제 26대재위 523~554
성왕

사비 천도·국호 '남부여' 개칭·통치 제도 정비로 백제 중흥을 도모

시험 포인트사비 천도(538)·남부여 개칭·한강 회복 후 신라에 빼앗김·관산성 전투 전사(554)
백제 31대재위 641~660
의자왕

신라 대야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나당 연합군에 사비성이 함락되며 백제 멸망

시험 포인트대야성 함락·나당 연합군에 사비성 함락(660) → 백제 멸망, 계백의 황산벌 전투
신라 17대재위 356~402
내물마립간

김씨 왕위 세습 확립·'마립간' 칭호 사용,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구 격퇴

시험 포인트김씨 독점 세습·'마립간' 칭호 시작·400년 고구려군의 왜구 격퇴(호우명 그릇)
신라 22대재위 500~514
지증왕

국호 '신라'·왕호 '왕' 확정, 우산국 복속·순장 금지·우경 장려로 체제 정비

시험 포인트'신라' 국호·'왕' 칭호·우산국(울릉도·독도) 복속·순장 금지·우경 장려·동시전 설치
신라 23대재위 514~540
법흥왕

율령 반포·불교 공인·병부 설치·금관가야 병합·독자 연호 '건원' 사용

시험 포인트율령 반포·불교 공인(이차돈 순교)·병부 설치·금관가야 병합·연호 '건원'
신라 24대재위 540~576
진흥왕

화랑도 개편·한강 유역 장악·대가야 정복으로 신라 최대 전성기 이룩

시험 포인트화랑도 국가 조직화·한강 유역 장악·대가야 정복·순수비(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국사 편찬
신라 27대재위 632~647
선덕여왕

한국 최초의 여왕으로 첨성대·황룡사 9층 목탑 건립 등 불교 문화 진흥

시험 포인트최초의 여왕·첨성대(천문대)·황룡사 9층 목탑(자장 건의)·분황사 건립
신라 29대재위 654~661
태종무열왕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나당 동맹을 맺고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 통일의 기반 마련

시험 포인트김춘추·최초의 진골 왕·나당 동맹 체결·백제 멸망(660)·이후 무열왕계 직계 왕위 세습
신라 30대재위 661~681
문무왕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당 전쟁에서 당을 몰아내 삼국 통일을 완성

시험 포인트고구려 멸망(668)·나당 전쟁 승리(매소성·기벌포, 676)로 삼국 통일 완성·문무대왕릉(수중릉)
신라 31대재위 681~692
신문왕

김흠돌의 난 진압으로 진골 귀족 숙청·9주 5소경·국학 설치·관료전 지급으로 왕권 강화

시험 포인트김흠돌의 난 진압·9주 5소경·국학 설치·관료전 지급·녹읍 폐지 = 전제 왕권 확립
신라 33대재위 702~737
성덕왕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고 당과의 관계를 회복해 통일신라 전성기의 기틀을 다짐

시험 포인트정전 지급(722) = 왕토사상에 따른 토지 지급·당과 국교 회복·상원사 동종 주조(725)
신라 36대재위 765~780
혜공왕

어린 나이에 즉위해 진골 귀족의 잇단 반란에 시달렸고, 성덕대왕신종을 완성했으나 피살됨

시험 포인트대공의 난(768) 등 진골 반란·성덕대왕신종 완성(771)·피살로 무열왕계 단절 → 신라 하대 시작
신라 38대재위 785~798
원성왕

독서삼품과를 두어 유학 실력으로 관리를 뽑으려 했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제 구실을 못 함

시험 포인트독서삼품과 실시(788) = 골품이 아닌 유학 성적으로 관리 선발 시도, 진골 반발로 한계
신라 42대재위 826~836
흥덕왕

장보고에게 청해진을 설치하게 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사치를 금하는 교서를 내림

시험 포인트청해진 설치(828, 장보고)로 해상 무역 장악·사치 금지 교서(834)·김대렴이 가져온 차 종자 재배
신라 51대재위 887~897
진성여왕

향가집 『삼대목』을 엮게 했으나, 수취 체제가 무너져 전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남

시험 포인트원종·애노의 난(889, 사벌주)·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894)·『삼대목』 편찬(888) = 신라 말 혼란
가야 1대재위 42~199(전승)
김수로왕

금관가야를 건국한 시조로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고 낙동강 하류 해상 교역 발전

시험 포인트구지가·난생 설화·금관가야(김해) 시조·허황옥(아유타국) 혼인 전승
가야 10대재위 521~532
구형왕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하여 금관가야가 병합됨

시험 포인트금관가야 멸망(532)·법흥왕에 항복·후손이 김유신 가문(신라 진골 편입)
발해 1대재위 698~719
고왕(대조영)

고구려 유민과 말갈을 규합해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698)하고 '진국' 성립

시험 포인트동모산 도읍·발해 건국(698)·고구려 계승 의식·초기 국호 '진(震)'
발해 2대재위 719~737
무왕(대무예)

영토 확장과 당의 산둥 지방 공격(장문휴), 독자 연호 '인안' 사용으로 대외 강경책 추진

시험 포인트독자 연호 '인안'·장문휴의 산둥(등주) 공격·돌궐·일본과 연결해 당·신라 견제
발해 3대재위 737~793
문왕(대흠무)

당과 친선·상경 천도·주자감 설치·연호 '대흥'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

시험 포인트상경 천도·주자감 설치·3성 6부 정비·독자 연호 '대흥'·신라도(신라와 교통)
발해 10대재위 818~830
선왕(대인수)

5경 15부 62주 지방 제도 정비·최대 영토 확보로 '해동성국'의 전성기를 이룩

시험 포인트5경 15부 62주 완비·최대 영토·'해동성국' 칭호·독자 연호 '건흥'
고려 1대재위 918~943
태조

고려 건국·후삼국 통일, 북진 정책과 사심관·기인 제도, 훈요십조 유훈

시험 포인트훈요십조·사심관제·기인제·북진정책(서경 중시)·호족 통합(혼인·사성)이 빈출
고려 2대재위 943~945
혜종

태조의 맏아들, 왕규의 난 등 왕위 다툼 속에 재위하다 병사

고려 3대재위 945~949
정종

왕규의 난을 진압, 서경 천도를 추진하고 광군을 조직해 거란에 대비

고려 4대재위 949~975
광종

노비안검법·과거제 시행, 백관의 공복 제정, 칭제건원으로 왕권 강화

시험 포인트노비안검법·과거제(쌍기 건의)·백관 공복·칭제건원(광덕·준풍 연호)으로 호족 억제·왕권 강화가 빈출
고려 5대재위 975~981
경종

전시과(시정 전시과)를 처음 마련해 관리에게 토지 지급 제도를 확립

시험 포인트시정 전시과(976) 시행 — 관직·인품 기준 토지 지급 제도의 출발점
고려 6대재위 981~997
성종

최승로 시무28조 수용, 2성 6부 정비, 12목에 지방관 파견, 국자감 정비

시험 포인트최승로 시무28조 채택·2성6부·12목 지방관 파견·향리제로 유교적 중앙집권 체제 확립이 빈출
고려 7대재위 997~1009
목종

개정 전시과를 정비, 강조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살해됨

고려 8대재위 1009~1031
현종

거란 침입 격퇴(귀주대첩), 초조대장경 조판, 개경 나성 축조, 지방 5도 양계 정비

시험 포인트거란 2·3차 침입과 귀주대첩(강감찬)·초조대장경 조판·나성 축조·5도 양계 정비가 빈출
고려 9대재위 1031~1034
덕종

거란·여진에 대비해 천리장성 축조를 시작

고려 10대재위 1034~1046
정종

천리장성을 완성하고 국방을 정비, 노비종모법 등 제도를 마련

고려 11대재위 1046~1083
문종

경정 전시과 정비, 남경 설치, 사학 융성(최충 9재학당), 고려 문벌귀족 전성기

시험 포인트경정 전시과·남경 설치·사학 12도(최충 문헌공도) 등 고려 문벌귀족 문화 전성기가 빈출
고려 12대재위 1083
순종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했으나 3개월 만에 병사

고려 13대재위 1083~1094
선종

송·요와 교류하며 문물을 정비, 의천의 불교 통합 활동을 후원

고려 14대재위 1094~1095
헌종

11세에 즉위한 어린 왕으로, 이자의의 난 뒤 숙종에게 양위

고려 15대재위 1095~1105
숙종

주전도감 설치로 해동통보 등 화폐 주조, 별무반 창설, 남경 개발 추진

시험 포인트주전도감·해동통보(은병) 등 화폐 발행과 여진 정벌 위한 별무반(윤관 건의) 창설이 빈출
고려 16대재위 1105~1122
예종

윤관의 별무반으로 여진 정벌, 동북 9성 축조, 국학에 7재·양현고 설치

시험 포인트윤관의 여진 정벌·동북 9성 축조, 관학 진흥책(7재·양현고·청연각)이 빈출
고려 17대재위 1122~1146
인종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겪음, 김부식 삼국사기 편찬

시험 포인트이자겸의 난(문벌귀족 폐단)·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김부식 삼국사기 편찬이 빈출
고려 18대재위 1146~1170
의종

향락과 문신 우대로 무신 차별이 심화, 정중부 등의 무신정변(1170)으로 폐위

시험 포인트1170년 무신정변(정중부·이의방)으로 무신 집권기가 시작 — 문신 차별이 배경으로 빈출
고려 19대재위 1170~1197
명종

무신정변으로 옹립된 허수아비 왕, 무신들의 권력 다툼과 민란(망이·망소이 등) 속 재위

시험 포인트무신 집권기 초 정치 혼란·중방 중심 지배·하층민 봉기(망이·망소이의 난)가 빈출
고려 20대재위 1197~1204
신종

최충헌이 옹립한 왕, 만적의 난 등 신분 해방 운동이 일어남

시험 포인트최씨 무신정권 성립기, 만적의 난(신분 해방 시도)이 빈출
고려 21대재위 1204~1211
희종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해 폐위, 최씨 정권의 절대 권력이 확인됨

고려 22대재위 1211~1213
강종

명종의 아들로 최충헌에 의해 즉위했으나 2년 만에 병사

고려 23대재위 1213~1259
고종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 천도,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조판

시험 포인트몽골 침입·강화 천도(최우)·팔만대장경 조판·처인성(김윤후) 항전이 빈출
고려 24대재위 1259~1274
원종

몽골과 강화하고 개경 환도, 이에 반발한 삼별초가 항쟁을 벌임

시험 포인트개경 환도(1270)로 무신정권 종식·원 간섭기 시작, 삼별초 항쟁(강화-진도-제주)이 빈출
고려 25대재위 1274~1308
충렬왕

원의 부마국이 되어 여·원 연합 일본 원정 참여, 정동행성 설치, 관제 격하

시험 포인트시호 앞 '충(忠)'자와 왕 격하는 원 간섭기 증거 — 정동행성·부마국·일본 원정·응방이 빈출
고려 26대재위 1298, 1308~1313
충선왕

개혁 정치를 시도, 원의 연경에 만권당을 세워 학술 교류를 이끔

시험 포인트만권당(연경)에서 이제현 등이 원 학자와 교류 — 성리학 수용 통로로 빈출
고려 27대재위 1313~1330, 1332~1339
충숙왕

찰리변위도감을 두어 폐단을 개혁하려 했으나 원의 간섭과 심왕 옹립 시도로 좌절

고려 28대재위 1330~1332, 1339~1344
충혜왕

실정과 폭정으로 원에 압송되어 유배 중 죽음, 두 차례 즉위와 폐위를 겪음

고려 29대재위 1344~1348
충목왕

8세에 즉위, 정치도감을 두어 개혁을 시도했으나 어려서 재위 4년 만에 사망

고려 30대재위 1348~1351
충정왕

12세에 즉위, 왜구 침입이 잦았고 재위 중 폐위되어 공민왕에게 왕위가 넘어감

고려 31대재위 1351~1374
공민왕

반원 자주 정책, 쌍성총관부 수복, 정동행성 폐지, 전민변정도감(신돈) 개혁

시험 포인트반원 자주(친원파 제거·기철)·쌍성총관부 무력 수복·정동행성 폐지·전민변정도감(신돈)이 빈출
고려 32대재위 1374~1388
우왕

왜구·홍건적 격퇴(최영·이성계), 요동 정벌 추진 중 위화도 회군으로 폐위

시험 포인트요동 정벌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 — 조선 건국의 전환점으로 빈출
고려 33대재위 1388~1389
창왕

우왕의 아들로 9세에 즉위했으나 이성계 세력에 의해 1년 만에 폐위

고려 34대재위 1389~1392
공양왕

고려의 마지막 왕, 과전법 시행 뒤 이성계에게 양위해 고려가 멸망(조선 건국)

시험 포인트과전법 시행(1391, 신진사대부 경제 기반)과 고려 멸망·조선 건국(1392)이 빈출
조선 1대재위 1392~1398
태조

조선 건국·한양 천도·정도전 등용·과전법 정비

시험 포인트위화도 회군으로 정권 장악 후 조선 건국(1392), 한양 천도. 정도전이 재상 중심 정치를 설계. 묘호 '조(祖)'는 나라를 세운 창업 군주에게 붙는다.
조선 2대재위 1398~1400
정종

제1차 왕자의 난 뒤 즉위, 개경 환도·사병 혁파 착수 후 태종에게 양위

조선 3대재위 1400~1418
태종

왕권 강화·6조 직계제·사병 혁파·호패법·신문고 설치

시험 포인트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집권. 6조 직계제로 왕이 직접 6조를 통솔하고, 사병을 혁파하며, 호패법으로 인구를 파악해 왕권을 크게 강화했다.
조선 4대재위 1418~1450
세종

훈민정음 창제·집현전·4군6진·측우기·공법(전분6등·연분9등)

시험 포인트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하고 집현전에서 학문을 장려했다. 4군6진 개척으로 북방 영토를 확정하고, 측우기·앙부일구 등 과학기구와 공법 세제를 정비했다.
조선 5대재위 1450~1452
문종

세자 시절 오래 대리청정, 즉위 2년여 만에 병으로 승하

조선 6대재위 1452~1455
단종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사사됨

조선 7대재위 1455~1468
세조

계유정난으로 집권·6조 직계제 부활·직전법 실시·경국대전 편찬 착수

시험 포인트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 왕권 강화를 위해 6조 직계제를 부활하고 직전법을 실시했으며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다.
조선 8대재위 1468~1469
예종

재위 1년여의 단명 군주, 직전법 정비·경국대전 편찬 지속

조선 9대재위 1469~1494
성종

경국대전 완성·반포·홍문관 설치·사림 등용·«동국통감»·«악학궤범» 편찬

시험 포인트«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해 조선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홍문관을 두어 언론·경연을 강화하고 김종직 등 사림을 등용했다.
조선 10대재위 1494~1506
연산군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사림 숙청, 폭정 끝에 중종반정으로 폐위

시험 포인트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과 훈구를 숙청하고 폭정을 폈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묘호(조·종)를 받지 못하고 '군'으로 강등되었다.
조선 11대재위 1506~1544
중종

중종반정으로 즉위·조광조 등용해 개혁, 기묘사화로 사림 실각

시험 포인트반정으로 즉위해 조광조를 등용, 현량과·소격서 폐지 등 개혁을 추진했으나 기묘사화로 조광조 등 사림을 숙청했다.
조선 12대재위 1544~1545
인종

재위 8개월여 만에 병으로 승하한 단명 군주, 기묘사화 피화 사림 신원

조선 13대재위 1545~1567
명종

을사사화·문정왕후 수렴청정·외척 세도, 임꺽정의 난

시험 포인트어린 나이에 즉위해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고 외척이 권력을 쥐었다. 을사사화로 사림이 화를 입고, 백성의 저항으로 임꺽정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 14대재위 1567~1608
선조

임진왜란·정유재란·붕당(동인·서인) 형성·이순신 활약

시험 포인트사림이 동인·서인으로 갈려 붕당 정치가 시작됐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 이순신·의병·명군의 활약으로 극복했다.
조선 15대재위 1608~1623
광해군

대동법 시행·중립외교(명·후금)·전후 복구, 인조반정으로 폐위

시험 포인트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펴고 경기도에 대동법을 처음 시행했다. 서인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폐위돼 '군'으로 강등되었다.
조선 16대재위 1623~1649
인조

인조반정으로 즉위·정묘호란·병자호란·삼전도 굴욕(청 항복)

시험 포인트반정으로 즉위 후 친명배금 정책을 펴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었다.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조선 17대재위 1649~1659
효종

북벌론 추진(군비 확충)·두 차례 나선정벌 참전

시험 포인트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청을 정벌하려는 북벌을 추진하며 군비를 확충했다. 청의 요청으로 나선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했다.
조선 18대재위 1659~1674
현종

두 차례 예송 논쟁(기해·갑인)으로 서인·남인 대립 격화

조선 19대재위 1674~1720
숙종

환국 정치·대동법 전국 확대·상평통보 유통·백두산정계비 건립

시험 포인트환국을 통해 붕당의 세력을 급격히 교체하며 왕권을 강화했다.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상평통보를 전국에 유통시켰으며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조선 20대재위 1720~1724
경종

장희빈의 아들, 병약해 단명·신임사화로 노론·소론 대립 격화

조선 21대재위 1724~1776
영조

탕평책·균역법·신문고 부활·«속대전» 편찬, 사도세자 사건

시험 포인트탕평책으로 붕당 간 균형을 꾀하고, 균역법으로 군포 부담을 2필에서 1필로 줄였다. 신문고를 부활하고 «속대전»을 편찬했다. 조선 최장수·최장기 재위 왕.
조선 22대재위 1776~1800
정조

규장각·화성 건설·장용영·신해통공·초계문신제·탕평 계승

시험 포인트규장각을 정비해 인재를 길렀고, 수원 화성을 건설했으며 친위군 장용영을 두었다.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탕평책을 계승했다.
조선 23대재위 1800~1834
순조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작·신유박해·홍경래의 난

시험 포인트어린 나이에 즉위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됐다. 신유박해로 천주교를 탄압하고, 삼정의 문란 속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조선 24대재위 1834~1849
헌종

8세에 즉위, 풍양 조씨 세도·기해박해, 23세에 후사 없이 승하

조선 25대재위 1849~1863
철종

강화도 농사꾼 출신 '강화도령', 안동 김씨 세도 절정·임술농민봉기

조선 26대재위 1863~1907
고종

흥선대원군 섭정·강화도조약 개항·대한제국 수립·광무개혁

시험 포인트즉위 초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했고, 강화도조약(1876)으로 개항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가 되어 광무개혁을 추진했으나 을사늑약으로 강제 퇴위됐다.
조선 27대재위 1907~1910
순종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경술국치(1910 한일병합)로 조선 왕조 종말

시험 포인트고종의 뒤를 이은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이자 조선의 마지막 왕.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조약)로 국권을 상실하며 조선 왕조 518년이 막을 내렸다.